▲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중국에 표류해 갔다가 일행 43명 전원과 함께 무사 귀환한 최부는 성종의 명에 따라 <표해록>을 집필했다는 이유로 사간원과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왕명을 받들었을 뿐 아니라 좋은 책까지 쓴 사람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탄핵한 대간들의 행위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왕조 정치 문화에 대해 알고 있었던 우리의 상식과도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대간들은 왜 최부를 탄핵했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탄핵을 받아 관직 진출이 거부된 최부는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번 글에서 말했듯이 당시 최부는 아버지 상중이었다. 대간들의 논리는 상중에 고국에 돌아왔으면 아무리 왕명이 있었다고 해도, 왕에게 먼저 아버지 상전에 가야 하니 책은 나중에 쓰겠다고 진언했어야 옳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사대부들은 선효후충론, 즉 효가 없으면 충도 있을 수 없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성종은 대간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일단 최부의 서용을 연기했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대신회의에서 중론을 모아 최부의 재임용을 관철시켰다. 한편 복상 기간 중에 <표해록>을 찬술하여 왕에게 바친 최부는 고향에 가서 상을 치렀다. 성종은 <표해록>을 읽어본 후 최부가 비범한 재능과 식견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최부는 상중에도 중국에서 배워온 수차를 제조하기도 했다.
최부는 모친상까지 당해 내리 4년을 복상해야 했다. 성종은 탈상한 최부를 서울로 불러 올렸다. 1491년 재위 22년의 일이었다. 성종은 최부에게 사헌부 지평 직을 제수했다. 그런데 임명 한 달이 지나도록 사간원에서 서경을 해주지 않았다. 중국에서 유달리 효를 강조하여 명나라 관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최부(황제를 알현하러 갈 때에도 상복을 벗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최종 순간에 옷을 갈아입었다.)가 국내에 와서는 불효자로 몰린 것이다.
사실 이것은 최부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지만, 상중의 신하에게 일을 시킨 군왕의 전횡을 지탄하는 면도 있었다. 성종은 원칙을 버리지 않는 가운데 최부 문제를 노련하게 해결해 나간다. 이때 성종의 나이는 불과 30대 초반이었다. 성종은 최부를 인견하여 위로한 후 옷을 하사하고 명나라로 가는 사절단의 서장관으로 임명했다.(서장관은 정사 다음의 제2서열) 대간들의 공격으로부터 최부를 보호하기 위해 외근을 맡긴 것이다.
최부가 사행을 마치고 귀국하자 성종은 최부를 성균관 교리에 임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헌부에서 항의를 제기했다. 이와 달리 홍문관에서는 벌써 수년째 곤욕을 치르는 최부를 옹호해 나섰고, 이것을 직권남용으로 간주한 사헌부는 한층 강화된 수위로 최부와 홍문관을 탄핵했던 것이다. 결국 지난번 글에서 보았듯이 성종은 철저히 조정의 중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반대 의견을 가라앉혔다.
성균관 교리가 된 최부는 석 달 만에 예문관 응교를 겸직하게 되었다. 이 자리는 대제학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요직이었다. 이로써 최부의 분상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셈이다. 하지만 그 해에 성종은 병을 얻어 죽었다. 뜻하지 않은 표류의 결과 최부는 군왕의 신임을 얻었지만 정적을 만들게 되었고 그 정적들의 견제가 최부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최부의 관직 승진이 빠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표류가 위대한 견문기 <표해록>을 낳았지만 최부 자신이 사대부로서의 뜻을 펴는 데에는 일종의 덫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1457년에 태어난 성종은 재위 25년 만인 1495년 38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다음의 왕은 우리가 잘 아는 연산군이다. 최부는 성종과 특별한 인연으로 요직에 진출했지만 연산군과는 악연을 맺는다. 최부는 끝내 무오사화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