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2020년 11월 6일 / 제292호] 영암우리신문l승인2020.11.06l수정2020.11.0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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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암문화재단 사무국장
김성식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특성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즉, 개인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후에 고대 로마제국에서 그리스어로 쓰인 이 글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동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던 표현은 ‘인간은 폴리스적인 동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원래 의도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다. 폴리스(polis)는 고대 그리스 지역에 퍼져 있던 도시국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 지역의 많은 국가들이 왕이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었던데 비해 아테네는 도시국가인 폴리스였으며, 이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말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를 더 완전하고 우월한 국가 형태라고 보면서 인간은 인간의 생존 본능 때문에 혼자서 살아가는 것보다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본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을 폴리스라고 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의 뜻은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경찰을 영어로 폴리스라고 부르는 것은 근대의 법치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인 17·18세기 유럽의 절대군주 시대에서 군주(君主)의 권력이 내정(內政) 전반에 걸쳐 경찰권에 의하여 마음대로 행사하였던 형태의 국가. 즉 경찰국가는 독일의 전신(前身)인 프로이센에서 군주를 중심으로 그 휘하의 관료군이 봉건영주의 분권적 지배를 타파하고 중상주의와 부국강병을 병용하면서 각종 복지·보호행정을 통해 국내 산업을 육성하려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인간을 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지 살펴보자. 농사꾼은 농산물을 생산하지만 농기계를 직접 만들지는 못한다. 또한 편리한 각종 가전제품 역시 생산하지 못한다.

이 사회는 여러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주고받고 대화를 하면서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결코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뜻글자인 한문에서도 사람인(人) 자를 서로 기대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역시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이 협업하여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 때 의미의 존재로 더욱 빛이 난다. 여러 유전적인 형질은 우리가 상호 협동하여 사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은 몸을 쓰면서 감정적 기억과 감각적인 경험을 결합하여 생존기술을 습득하였다. 인류는 출현 이래 끊임없이 타인과 접속 및 접촉을 늘려가면서 언어와 도구를 발명해서 쓰고 더 정교한 손재주, 지략, 융통성, 꾀, 협동으로 더 똑똑한 종(種)으로 진화해나갔다. 

그러나 코로나 펜데믹은 모든 삶의 영역에 악 영향을 끼치며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집콕으로 인한 우울감, 건강악화, 경제상황과 삶의 질 악화, 정부 대응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증폭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이 요구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을 도약 삼아 문명의 번성과 변화와 혁신의 발판을 마련했으나, 지금은 대면 방식이 전염병 감염 위기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언택트가 만든 뉴 노멀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100% 대면 방식은 지양하고 우리가 그동안 축척해둔 빅데이터를 통한 AI(인공지능)를 활용하는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 가상의 세계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대면활동을 통해 얻은 자연친화적인, 인문학적인 정보가 아니라 기계적인 활동으로 얻어낸 공학적인 정보만 활용하므로 인하여 인간적인 사회적 활동 기능은 갈수록 퇴보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철학자 니체는 “함께 침묵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일은 함께 웃는 것이다”라고 했다. 두 사람 이상 함께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감동하며 울고 웃으면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칭찬하며 위로하면서 대면활동 방식으로 쌓은 우정과 연대는 사회적 관계망을 이루는 기초적 토대로 보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아무리 언택트 시대라고 디지털기계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조심스럽게 늘리면서, 대면에서 얻어지는 감각의 친밀성, 표정, 냄새, 맛, 감촉, 느낌 등으로 얻어지는 과거와 같은 사회적 인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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