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봉건국가? 그건 무지의 소치 ‘봉건’의 뜻도 모르는 우리가 봉건적이다

[2015년 10월 30일 / 제46호]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 ② 영암우리신문l승인2016.11.08l수정2016.11.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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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우리가 흔히 쓰는 ‘봉건’이라는 말에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봉건적’이라는 파생어는 구태적이고 인습적이라는 뜻을 가진다. 또한 봉건사회, 봉건국가라는 합성어는 신분, 이념, 종교 등의 요소에 의해 차별과 억압이 이루어지는 체제를 뜻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쓰는 우리말 사전’류의 책들에는 예외 없이 ‘봉건’이 등재되어 있다. 먼저 왜 이렇게 된 것인지를 살펴보자. 우리말 봉건(封建)은 원래 ‘땅을 나눠주어 나라를 세우다’는 뜻이다. 그러나 서양말은 확 다르다. 봉건주의는 영어로 'feudalism'인데 이 말의 어원인 'feud'에는 ‘오랜 동안의 불화와 반목’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결국 서양의 봉건주의 즉 feudalism은 중세 유럽에서, 영주가 가신(家臣)에게 봉토를 주고, 그 대신에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주종관계의 제도를 의미한다.
반면 동양의 봉건제도는 주나라의 것을 말한다. 이것은 기원 전 11세기에서 기원 전 3세기에 이르는 까마득히 먼 옛적의 것이다. 게다가 주나라는 당대 상황에서 대단히 이상적인 체제로서 많은 후세인의 칭송을 받은 나라이다. 중국의 봉건제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의 중원 통일로 막을 내렸다. 이후 한대(漢代)에는 중앙집권제라고 할 수 있는 군현제가 실시된다. 단 일본은 특이하게도 서양처럼 최근세까지 봉건제를 유지했다.
중국보다 약간 뒤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고려시대 중, 후기 중앙집권제가 동요하면서 귀족정치, 호족정치의 폐해가 나타났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역성혁명은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도전은 한편으로는 주나라를 흠모하면서도 정치제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선택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었다.
조선은 봉건국가였는가? 그렇다면 조선에 비해 대한민국은 진보했는가? 식민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이제 남들은 조선이 봉건국가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왜 우리만 유독 조선이 봉건국가라고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봉건제도를 경제적으로는 영주와 농노의 주종관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도전이 구상한 토지제도는 전국의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여 인구수에 따라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 계민수전(計民授田)이라고 했다. 이것은 전 국민을 자작농으로 만들려던 것이었다.
언젠가 나는 ‘모양주의(慕洋主義)’라는 말을 지어서 제시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모화주의(慕華主義)에서 유추한 것으로 대책 없이 서양을 동경하는 의식을 뜻한다. 또한 나는 식민진보(植民進步)라는 말도 제시한 적이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식민사관에 빠져 있는 진보를 뜻한다. 나는 이 식민진보를 보수보다 싫어하며 수구보다 나을 게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모양주의자나 식민진보는 대부분 조선을 봉건국가로 인식하는 도착적인 태도를 보인다. 나는 그들이 모종의 저의나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서구에 유학했거나 서구 유학 출신을 우월하게 보는 사람들이다. 결과 그들은 단지 잘못 배웠거나 편중되게 읽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의 토지개혁은 오늘로 치면 토지국유화와 유사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급진적인 개혁정책은 기득권 세력의 비협조와 방해로 완수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혁명적인 토지 개념은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조선말기까지 상당 부분 계승되었다. 조선은 토지국유화는 아니더라도 토지공개념에 근접했던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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