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암군청에서 만난 윤순기(60)씨의 말이다. 윤 씨는 영암군 청사 곳곳을 치우는 청소요원이다. 많지 않은 월급에 속된 말로 ‘폼’나지 않은 직업이지만 윤 씨에게는 그 어떤 직업보다 소중하고 값진 직업이다.  
윤 씨의 하루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어 오후 4시경에야 일이 마무리된다. 자신이 근무하는 시간동안 윤 씨의 하루는 쉼 없이 돌아간다. 청사 주변을 쓸고 닦는 일부터 잡초제거, 사무실 쓰레기 수거, 나무 전정 작업까지 윤 씨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물론, 이 모든 업무가 윤 씨에게 할당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사를 청소하는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가져 시작했기에 이제는 자연스러운 업무가 되어버렸다. 윤 씨가 영암군청에서 청소요원 일을 시작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암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을 떠나 외지 생활을 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혼의 아픔까지 더해지면서 윤 씨는 유년시절 떠났던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0대의 부푼 꿈을 키웠던 고향이었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찾아온 고향이 윤 씨에게는 너무나 낯선 곳이었다.
고향을 찾은 뒤 윤 씨는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어 지냈었다.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윤 씨를 억눌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무기력한 시간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세상과의 이별을 고민할 만큼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그러던 중 윤 씨는 군청에 근무하고 있는 고향 후배들인 김철호 재무과장(현 총무과장)과 김종현 홍보교육과장(현 재무과장)을 찾았다. 그리고 윤 씨는 후배들에게 몸이 불편한 관계로 농사일이나 막노동은 불가능해 생계가 어렵다며 청소 일자리라도 하나 알아봐줄 수 없겠냐면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다. 자신으로 인해 후배들이 혹여 입장이 곤란해질까 걱정도 되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겠다는 심정으로 마지막 부탁을 해보았다.
마침 청소요원이 결원이었던 탓에 윤 씨는 곧바로 계약직에 채용될 수 있었다. 그렇게 윤 씨와 영암군청과의 관계는 시작됐고 윤 씨의 성실함은 금방 군청 내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특히 올겨울 폭설로 인해 교통 대란이 있던 날에는 걸어가더라도 출근시간만큼은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5시 미암에 있는 자신의 집을 나섰고, 엄동설한에 더딘 걸음을 재촉해가며 군청까지 정시 출근을 한 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는 영암군에서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비단 이뿐만 아니다. 단풍이 짙어지는 계절이 되면 꾀부리지 않고 떨어지는 낙엽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이라도 치우고 또 치우는 모습에 영암군청 직원들은 ‘성실맨’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결같이 환한 미소로 직원들을 대하면서 윤 씨에 대한 직원들의 신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모습에 직원들은 윤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들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윤 씨는 이마저도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자신의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올해로 계약의 마지막 해인 그에게 군청 청소요원이라는 직장은 몸과 마음을 담는 곳, 바로 운명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천직 의식이 지금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은 군청 내 젊은 공무원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윤 씨는 “저는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상쾌한 아침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물질적으로 드릴 수 없지만 군청을 찾는 분들에게 깨끗한 아침 길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입니까. 또 제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남에게 아쉬운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직원 분들 때문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