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6명 추가 서훈…“영보마을은 독립운동의 성지”

광복절 독립유공자 포상…영보마을 50명 넘어서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이라는 역사자산 잘 살려야”
[2022년 8월 12일 / 제379호]
강용운 기자l승인2022.08.16l수정2022.08.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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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순국선열 6명이 90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서훈(敍勳)을 받게 됐다.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회장 최윤호)는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최규태, 최옥태, 최병돈, 이명범, 최양홍, 문영신 등 총 6명이 독립유공자로 확정돼,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 추서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의 독립유공자 포상은 50명을 넘어서며, 덕진면 영보마을이 독립운동 성지로 떠오르게 됐다.

영암 형제봉 사건 또는 영보정 만세운동이라 불렸던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은 그동안 사회주의 계열 운동이라는 이유로 서훈에서 배제됐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6월 국가보훈처가 ‘사회주의 활동 참여자도 북한의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았으면 포상한다’고 심사기준을 바꿨다. 또 지역 내에서도 영암 형제봉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세미나 개최, 유족회 결성 및 기념사업회 창립 등 꾸준한 활동을 통해, 2018년 6명, 2019년 3명, 2020년 4명, 2021년 23명이 연이어 추서되고 있다. 같은 마을에서 서훈자가 이렇게 많이 나온 사례는 독립운동사에서도 드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은 1932년 6월 4일, 덕진면 영보촌의 뒷산인 형제봉(금정면 아천리)에서 열린 메이데이(노동절)기념식을 즈음한 항일운동이다. 기념식에 이어 형제봉을 내려온 참가자들은 덕진면 영보리·운암리·백계리 등지에서 “일본인은 우리의 논과 밭을 내놓아라”, “일본인들은 이 땅에서 물러가라”, “마름(지주를 대리해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의 횡포를 지양하라”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펼쳤다. 그후 이 시위에 대해 일경이 출동하여 검거가 진행되면서, 시위를 주도한 100여명이 검거되었다. 당시 검거된 인원들 중에서 재판에 회부된 인원도 74명에 달한다.
이번 광복절에 6명이 추가로 포상받음에 따라 당시 재판을 받았던 74명 가운데 50명 이상이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

최윤호 기념사업회 회장은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다. 특히 사회주의 운동이라는 평가와 좌익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군부독재시절 연좌제를 피하고자 항일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내지 못했었다”면서 “그 역사를 우회적으로 기리고자 영보 풍향제를 열었고, 이후 독립유공자 서훈을 연이어 받으며 이제는 영보마을이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국에서 이보다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은 없다. 타 지역은 20여명만 되도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진행하며, 후손들의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전하며 “영암군 역시 기념사업을 한다고 용역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가 보물인 영보정마저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면서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영암농민항일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고 영암의 자산으로 독립운동의 성지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용운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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