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영암의 한 고구마 밭, 열댓 명씩 모여 앉은 여성들이 고구마 파종에 한창 이었다. 머리엔 챙 넓은 모자를, 손에는 호미를 들었다. 절반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남은 절반은 외국인 여성들이었다. 

“어이~ 다한 사람은 얼른 이쪽으로…” 여성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60대 남성이 고함치며 작업 지시를 했다. 논밭 일꾼들의 책임자이자 팀장, 여기선 일본말 그대로 ‘오야지’였다.

이들은 이날 새벽 6시부터 오야지가 모는 승합차 2대에 나눠 타고 영암과 나주 등지에서 온 이들이었다. 매일 새벽 논밭으로 일꾼들을 실어 나르는 일종의 농촌인력 공급 차량, 이른 아침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대부분 야간운행을 해야 하고, 작업 시간을 맞추느라 과속은 부지기 수이고 안전벨트나 정원초과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지난 2018년 5월 1일 전국적 공분을 샀던 ‘농촌인력 중개차량’ 사고가 발생한지 정확히 2년 후인 지금의 모습이다. 사고 당시 8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지만 바뀌거나 다른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임금체계도 2년 전과 비슷하다. 통상 밭 주인으로부터 8만원을 받고 이중 ‘오야지’에게 중개수수료와 교통비 명목으로 1만원에서 1만5000원을 떼 준다. 하루 열두시간이 넘는 노동에도 상해보험 보장 등은 여전히 언감생심이다.

해당 업체가 관청에 허가를 내거나 자격증을 발급받지 못한 무허가 업체이기 때문이다.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려면 사회복지사나 직업상담사, 공인노무사 등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최소 20㎡(약 6.05평) 규모의 사무실도 갖춰야 한다.

정식 인력사무소가 일용직 근로자에게 일감을 소개할 경우 일당의 10~15%를 소개료 명목으로 떼어가는데 무허가 오야지들은 5~7%정도만 받는 탓에 논밭 주인들 입장에선 한 번 거래를 트면 알아서 원하는 인력을 공급해주니까 좋고, 정보력이 부족한 노인들은 일감이 끊기지 않아 이같은 무허가 인력중개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를 피하지 못할 처지인데 그마저도 필요로 하는 인력을 제때 수급 받기 위해 농가입장에서는 인력중개소는 없어서는 안될 처지가 됐다.

농민 A씨는 “파종에서 수확까지 인력 150명이 필요한데 코로나19로 인력들이 크게 줄었다”며 “농가입장에서는 등록업체인지 무등록 업체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인력을 제때 공급해주느냐 안해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사고 이후 등록업체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무등록 업체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며 “농촌에서 급하게 일손이 필요하다보니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친분 등을 이용해 인력 공급이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해 무등록 업체가 근절되지 못하고 있고 예전만큼의 경각심도 줄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