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시사평론가 김갑수

제주도의 아름다운 이름들… 화북천, 다랑쉬굴, 밭이오름, 별도봉동굴, 정뜨르비행장, 동시에 이곳들은 섬뜩한 학살 현장들이기도 하다. 달걀만큼 작은 섬 제주도에는 학살 현장만 66곳에 이른다. 최소 3만이 넘는 인민이 영문 모를 죽음을 당했다. 7만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4.3 참극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로부터 ‘해방’된 다다음해 해인 1947년, 그것도 3·1절 기념식장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당시는 미 군정 치하였다. 기념식이 파할 무렵 일부 군중이 “통일조국전취”를 외치며 큰길로 나섰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즉 분단에 반대한 것이었다.

이때 난데없이 경찰의 총성이 울렸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이 무모한 발포로 인해 관덕정과 도립병원 앞에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게 된다. 무시무시한 대량 참극은 이로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나라의 반공 공권력은 “원래 제주도는 주민의 90%가 좌익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고 규정한다. 이것은 대대적인 매카시즘이었다. 뜬금없이 서북청년단이라는 괴 단체가 섬에 쳐들어왔다. 노쇠한 친미 폭군 이승만은 방한한 미 육군성 드레퍼 차관에게 섬을 미군 군사기지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미 군정장관 딘이 극비리에 제주도를 방문했다. 직후 제주 비상경비사령관은 “밤 8시 이후 통행금지 위반자는 사살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5월이 되자 미군 수뇌부는 “무장대를 총공격하여 사건을 단시일 내로 해결하라”는 명령을 또 내린다. 6월 2일에는 제주 주둔 미군 사령관 이 “제주도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초토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실토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발했다. 닷새 후인 8월 20일, 800명의 경찰이 제주도에 증파되었다. 이승만은 법조문에도 없는 계엄령을 내려 무자비한 토벌작전을 감행했다. 해안 5km 이상의 중산간 지대 마을이 모두 토벌의 표적이 되어 모든 가옥이 불살라지고 최소 1만2000명 이상의 주민이 다 죽어나갔다.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6일, ‘전 제주지구 예비 검속자 명부 제출의 건’이 제주도 경찰국장에게 하달된다. 이때부터 예비 검속자에 대한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지게 된다. 주정공장 수감자들이 사라봉 앞 바다에 수장되고, 서귀포 관내 수감자 150명이 바다에 수장되었으며, 또한 제주경찰서 등지에 수감되어 있던 예비 검속자 수백 명이 제주 앞 바다에 수장되었다.

물에서 죽으면 물로 갔고 산에 끌려가서 죽으면 ‘골로 갔다’고 했다. 섬이 아닌 목포형무소 수감 제주인과 대전 형무소 수감 제주인 300명이 여수 순천 관련자 700명과 함께 즉결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1950년 10월 10일, 계엄령이 해제되고 잔류 예비 검속자가 석방된다. 이로부터 4년 후인 1954년 1월 15일 제주도 경찰국장은 잔여 무장대가 6명뿐이라고 발표한다.

이들이 마저 소탕된 1954년 9월 21일에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됨으로써 4·3 참극은 7년 7개월 동안의 악몽 같은 터널을 외견상으로나마 벗어나게 되었다.

4·3 항쟁의 초기에는 남로당 제주위원회가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주위원회가 북과 연락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니 북의 지령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흑색선전에 불과하다. 2007년 이명박 정부는 4·3 위원회를 해체했다. 이를 기화로 수구세력은 희생자들에게 또다시 빨갱이 덧칠을 시도했다. 그런데 설사 그들이 빨갱이라 하면 어쩔 것이냐?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는 없다. 하지만 그 기억을 어떻게 규명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미래가 좌우된다. 4·3 항쟁은 2차대전 후 처음 벌어진 인류 최대의 학살극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5,000년 우리 역사 희대의 양민 학살극이기도 했다. 어두운 과거를 묻어 두는 자들에게는 어두운 미래가 대기하는 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찾아나서는 일을 꺼려서는 아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