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정벌, 이성계 빼고는 모두에게 유리한 일

[2019년 10월 11일 / 제239호]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2 영암우리신문l승인2019.10.11l수정2019.10.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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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아직도 요동정벌이 위화도회군으로 인해 무산된 데 대하여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당시 상황에서 요동정벌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겁니다.
최영과 이성계가 등장하기 이전 고려의 정치구도는 철저히 원나라를 향해 짜여 있었습니다. 고려의 권문세족은 모두 친원파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원나라의 힘을 배경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대륙의 정세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원(元)이 쇠퇴하고 명(明)이 부상한 거지요. 이 틈을 타 공민왕은 반원 정책을 내세우며 원에 빼앗겼던 철령 이북의 국토를 회복하고 친원세력을 제거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되자 친명세력이 형성되어 기존의 친원세력과 경쟁하게 됐지요. 공민왕이 살해되고 우왕이 즉위하자 이 두 세력 간의 갈등은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한편 원을 축출하고 중원의 주인이 된 명은 전대의 원이 통치했던 영역을 그대로 이어 받으려고 했습니다. 명은 공민왕이 수복한 철령 이북의 고려 영토를 반환하라고 압력을 가했지요. 이것은 새로이 부상한 친명파를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고려사》 등의 기록을 따르면, 고려 말 요동정벌을 놓고 벌인 논쟁의 중심은 최영 대 이성계의 대립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최영이 요동정벌의 전면에 나서게 된 데에는 우왕의 요구와 부추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민왕의 죽음으로 졸지에 권좌에 오른 우왕은 권력기반이 취약했습니다. 우왕에게는 독자적인 무장조직이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왕을 지지하는 세력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최영을 필두로 하는 권문세족과 이성계를 정점으로 하는 신흥 세력은 잘 훈련된 사병 조직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병을 배경으로 번번이 우왕에게 간섭하고 협박했습니다. 특히 친명파는 우왕을 신돈의 아들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우왕은 자기도 공민왕처럼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지요. 우왕이 자기 측근이었던 내시들을 죽인 것도 이런 두려움이 과잉으로 빚어진 일입니다. 그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왕이 왕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자기 스스로 사병 조직을 가지거나 아니면 신하들이 가지고 있는 사병 조직을 없애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당시 형편에서 불가능했습니다.
10세의 어린 나이로 등극하여 20대 중반이 된 우왕은 나라를 자기 뜻대로 통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왕은 어쩔 수 없이 무력 집단과의 담합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명망 높은 최영, 이성계와 손잡고 자기를 왕위에 오르게 한 친원파 권문세족의 대표 격인 이인임 일파를 제거했습니다.
또한 우왕은 최영의 딸과 혼인하여 사위가 되었습니다. 당시 최영의 나이는 70을 넘어 있었습니다. 돌이켜 볼 때 우왕이 이성계를 개경으로 끌어들인 것은 선대의 공민왕이 지방 실력자였던 이자춘(이성계 부친)을 끌어들인 일보다 더 위험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명이 고려에 땅을 반환하라고 압력을 넣은 시점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이에 우왕은 명과 일전을 불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최영의 지지를 이끌어 냅니다. 최영은 자존심과 국토애가 남달랐던 인물입니다. 당시 명의 행패에 대하여 최영뿐 아니라 많은 고려인들이 분개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왕은 왕으로서 국토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신하들을 압박했습니다. 우왕과 최영은 과거 원나라의 지배 영역이었던 철령 이북의 땅을 내주지 않으려면 이 땅의 지휘탑이 있는 요동을 쳐서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요동정벌이 성공했다고 해도 고려가 요동 땅을 계속 영토로 확보할 가능성은 매우 적었습니다. 고려는 철령 이북의 국토 수호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왕은 요동정벌 자체보다는 다른 데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우왕은 명과 대규모 전쟁을 치르게 함으로써 고려 무장세력의 와해를 노렸던 겁니다. 우왕은 정벌의 성공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정벌군에게 승리하고 돌아오라는 의례적인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벌군은 우왕의 의도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는 형국이었습니다.
한편 최영은 최영대로 요동정벌을 통해 당대 최대 무장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던 이성계 일파의 힘을 빼놓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왕이나 최영이나 둘 다 능숙한 정치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요동정벌은 이성계 빼고는 모두에게 유리한 일이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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