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후유증에 심신 고통…부친이 바란건 일본의 사과 뿐”

[2019년 10월 4일 / 제238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영암 사람들 <8> 박준영 기자l승인2019.10.07l수정2019.10.0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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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대신 끌려간 강제징용 후유증에 다리 절단한 故 오동균 씨
평범했던 가정의 삶도 절단…“일본의 진실한 사과라도 있었으면”

“일제 강제징용 후유증으로 아버지가 다리를 절단 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가세가 기울면서 삶이 궁핍해졌다”
삼호읍에서 거주하는 오기종 씨는 고인이 된 부친 오동균 씨을 회고하면서 당시 열악했던 가정형편을 털어놨다.
1919년 전남 당양군 고서면 산덕리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던 부친은 일제에 의해 북해도에 위치한 한 탄광에 강제동원됐다. 20살의 젊은 나이였다. 약관의 나이에 강제징용을 끌려갔던 부친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러한 삶은 약 4년여간 계속됐다.
오씨의 부친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이유는 마을이장이 일제에 제공한 ‘강제징용자 목록’에 부친의 형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부친은 한 집안의 장손이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형님을 대신해 강제징용을 가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순사들에게 끌려가듯이 그렇게 부친은 일본으로 떠났다. 이후 4년간 가족들은 오씨의 부친이 어디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장남이었던 오기종 씨 마저도 태어나기 전이라 더욱 정보는 흐릿했다. 다만, 당시 오씨의 고모의 기억을 빌려 부친의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기적적으로 강제징용에서 돌아온 부친은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맨몸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돈을 떠나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 가족에게는 ‘일제강제동원’은 아픈 기억으로만 잊혀지는 줄 알았다.
부친이 어머니 이해기 씨와 결혼하고 4남1녀를 두고 살면서 이러한 기억은 조금씩 잊혀져갔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제강제동원의 후유증은 오기종 씨의 가족들에게 너무나 평범한 삶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바로 부친이 강제동원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것. 2년 뒤 병이 재발되면서 또 다시 다리를 절단하게 되면서 가족들의 삶도 함께 절단됐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부친의 치료비마저 늘어나면서 오씨를 비롯한 5남매는 어린나이부터 생계를 고민해야 했다. 특히 10살 남짓했던 오씨는 병환중인 부친과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자 발품을 팔아야 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매일 10㎞가 떨어진 곳에서 땔감을 해오고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도와가며 생계벌이에 나서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씨가 학교를 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러던 중 1960년 5월 부친이 작고를 하면서 오씨의 가정은 더욱 힘들어졌다. 집안의 버팀목이 사라지자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그 와중에 사기를 당하면서 그나마 재산으로 남아있던 2마지기 남짓의 논도 사라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오씨는 “어린 나이였지만 후회하고 남 탓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며 “어떻게든 살아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어린나이부터 위험하고 힘든 일만 해왔다”고 한탄했다.
남들보다 바쁘고 힘들게 살았지만 가난이라는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장남으로서 5남매를 둔 가장으로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자신과 같은 삶을 자식들이 살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앞만 뛰며 살다보니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 비로소 주위를 보니 자신의 아내는 암 판정으로서 세상을 먼저 떴고 80년 가까운 세월동안 유일하게 남은 것은 20평 남짓의 전셋집이 유일했다.
오씨는 “일제의 강제동원이 아니었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미 지난 일 후회한들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며 “한편으로는 당시의 어려운 생활 때문에 내가 평생을 버텨올 수 있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바람에 대해 오씨는 “아버지가 숨을 거둘 때까지 원했던 건 보상이 아닌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과”라며 “시간이 더 많이 흘러 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모두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일본 측의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영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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