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갑수

역사가 중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역사 중에서도 어떤 역사가 더 중요할까? 당연히 가까운 역사일수록 중요하다. 이에 따라 현시대의 위상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직전 시대의 역사를 정리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현 시대의 명분과 기준을 만들고 미래로 지향해 나갈 좌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대들은 이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시대가 끝나면 다음 시대에서 전대(前代)의 역사를 국책사업으로 총정리해 놓았다. 예컨대 《삼국사기》와 《고려사》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일제에 의해 망했기 때문에 그럴 여력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에게 근대사학이라는 것을 주입시킨 일제는 조선 역사를 자기들의 정치적 욕망에 맞춰 날조했다. 그들은 조선 역사를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해석하여 유통시켰다.
우리의 직전 역사는 일제의 의해 고식적이고 자생력 없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조선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폄하되었다. 결과 구제불능의 조선은 망해도 싼 나라, 가만히 두어도 망했어야 할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일본이 조선을 구해주기 위해 나섰다고 했다. 이 덕분(?)에 정작 조선을 망하게 한 일제 침공의 역사가 은폐되었다.
일제 때 선각자 연하던 조선 지식인들은 유교와 양반이 나라를 망쳤으니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이런 자조(自嘲) 의식은 오늘의 지식인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은 유교와 양반들에게 마구 돌을 던진다. 유교가 민족을 망쳤으니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광수 같은 자가 가장 인기 있는 유명 인사였듯이, 이렇게 도착된 가치의식은 오늘날에까지 전수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를 들여다보면 조선왕조는 신유학을 바탕으로 지식인 관료들이 중앙집권적 문치주의를 정착시킨 세련된 근세국가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세종대의 집현전은 조선의 문화적 기틀을 만들었으며 장장 90년의 노고 끝에 완성한 《경국대전》은 중앙집권적 양반 관료 체제의 결정판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세계에서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의 문치주의 국가를 이룩했다.
“우리 민족의 역사상 조선조의 건국은 신라의 삼국통일이나 고려조의 성립과는 다른 매우 혁명적인 전환의 역사 과정을 거치게 된다. 통일신라나 고려조의 성립은 정복에 의한 새로운 지배층의 교체를 의미할 뿐, 지배 - 피지배의 구조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대규모의 사회적 변동은 수반되지 않았다.... 조선조의 건국은 소위 역성혁명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지배구조 자체의 변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윤병철, <조선, 말이 통하다>)
며칠 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완독하는 데 하루 4시간씩 시간을 써서 2년 반~4년이 걸린다는 《조선왕조실록》이다. 내 평생 세 번째의 도전이다. 이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나는 2년 전에 낸 《진짜조선역사》에 이어 또 한 권의 조선 역사서를 낼 작정이다. 제목은 ‘조선 역사의 쟁점들’(가제)이고 첫 장의 논제는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