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가족의 삶, 일제에 모두 빼앗겼다”

[2019년 9월 6일 / 제235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끌려갔던 영암 사람들 <5> 박준영 기자l승인2019.09.06l수정2019.09.0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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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탄광에서 진폐증  앓고 돌아온 故 양귀봉 씨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숫자는 연인원 600~700만명이고 이중 일본과 만주 등 국외로 동원된 노무인력이 150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중 10~20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숫자가 말해주듯 이것은 당시 총 인구 2500만 정도에 불과하던 조선인을 상대로 벌어진 전방위적 강제동원이었다. 도포면에서 사는 양해근 씨의 부친 故 양귀봉 씨도 이중 한 명이다.
고인이 된 양귀봉 씨는 1940년 3월 10일 경 강제로 끌려간 뒤 소식이 없다가 광복 후인 1945년 8월 고향 도포면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누구에 의해 무엇 때문에 끌려가는 지도 모른 채 강제로 동원됐다가 5년여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확실한 것은 6남매 중 장남이었던 아버지가 탄광을 자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셋째가 대학을 졸업하고 막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집안의 경제사정은 어렵지가 않았다. 여기에 이제 막 결혼해 자손도 없는 장남을 타 지역으로 보내는 것 역시 집안어른들 입장에서는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이제 막 결혼을 한 장남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탓에 집에는 내내 우환이 짙었다. 꿈에 그리던 아들, 그리고 남편이 돌아왔지만 수년간 탄광 노동으로 얻은 진폐증으로 몸은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상태였다.
어린 나이의 양해근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멈추지 않는 기침을 힘들어하시는 모습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장남으로서 자신이 아프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양해근 씨가 기억하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당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하지만 2004년 11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 진상 조사를 통해 조금씩 밝혀지는 사실과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의 조각들이 하나 둘 씩 맞춰지자, 자신의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셨던 이유와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어머니가 왜 그토록 힘들어 하셨는지 조금씩 이해가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당시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아버지가 일했던 곳이 일본 홋카이도라는 것,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손갑수 씨라는 분이 고된 일을 하면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휴식시간마다 책을 보더니 나중에 면장을 했다는 정도가 아들 양씨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변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유추해보니 기가 턱하니 막혔다. 사람하나 제대로 지나다니지 못할 작은 통로에 사람이 옆으로 누운 채 하루 12시간씩 쉬지도 못하며 노동에 시달렸을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양씨를 일제에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로 인정은 됐다. 다만, 양씨가 일한 탄광이 정확하지 않아 이번 소송에는 동참하지 못했다. 자식된 입장에서 양씨는 평생을 진폐증으로 힘들게 사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픈 남편을 대신에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지도 모른 채 경제활동과 가정을 돌보다 해근 씨가 12살 되던 해 돌아가셨던 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드리지 못한 것이 죄스럽다. 
장남 양해근 씨는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았던 우리 집안이었지만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조부모, 부모, 나의 형제의 인생이 모두 망쳤다”며 “일본이 자꾸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한국인 징병·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해결은커녕 앞으로 계속해서 문제제기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씨는 “35년 전 갑자기 피를 토하며 유언 한마디 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버지를 대신해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것이 저의 유일한 목표이고 삶의 이유다”고 강조했다.

박준영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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