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은 호남의병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2019년 8월 30일 / 제234호] 영암의병사연구 세미나 개최…영암의병사 조명 / 금정 국사봉, 남도의병의 지휘본부 및 심장부 확인 장정안 기자l승인2019.08.30l수정2019.08.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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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백척간두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영암 의병’의 역사를 복원하고 정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9일 영암문화원이 주관하고 영암군이 주최해 영암군청 왕인실에서 열린 ‘영암의병사 연구 세미나’에는 전동평 군수와 조정기 군의장을 비롯한 지역기관단체장과 의병장 후손 및 군민 300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 날 세미나는 초당대학교 박해현 교수의 ‘한말 영암의병’, 영암역사회 조복전 회장의 ‘임진의병과 영암’을 주제로 한 발표와 오수열 교수(조선대명예교수)와 이종범 원장(한국학호남진흥원)의 토론이 있었다. 이 세미나는 그동안 소홀히 취급된 영암의병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영암의병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먼저 ‘임진의병과 영암’을 발표한 조복전 회장은 을묘왜변 때 의병을 일으킨 양달사 의병장이 조선 최초의 의병임을 주장하며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에 적극 참여한 영암의병들의 실체를 밝혔다.
영암이 ‘호남의병의 성지’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전제한 박해현 교수는 영암의병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호남창의소’라는 의병부대를 영암의병들이 결성하였고, 이것을 토대로 심남일 의병과 ‘호남의소’라는 남도 최대의 의병부대가 영암 국사봉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는 것을 실증하였다. 아울러 국사봉이 의병사령부로써 전남의 중남부 지역에서 전개된 의병전쟁의 심장부였음을 밝혔다. 
영암 의병들의 구체적인 부대 현황 및 전투상황을 일본군 진중일지를 이용하여 복원하고, 국사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의병 전쟁의 양상을 실증함으로써 ‘영암의병’이 ‘호남의병’의 핵심임을 주장했다. 특히 박교수는 영암은 확인된 의병만 187명, 결성된 의병부대만 17개나 되는 등 다른 지역과 비교되지 않는 의병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날 세미나에서는 여러 가지의 역사조사를 통해 영암의병이 조선시대 최초 의병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병임이 확인됐으나 영암의병에 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국사봉에는 농소·용천·사촌·이암 등 빛나는 ‘영암 의병’들의 전승지와 ‘고인동’, ‘진터골’, ‘칠성동’ 등 ‘영암의병’들의 활동상을 살필 수 있는 유적이 많아 구제적인 연구와 더불어 유적지 정화사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의병전쟁의 ‘시작-전개-대미’에 영암의병이 있었다”며 “연구과정에서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서 ‘영암의병’을 8인이나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었고 앞으로도 영암의병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정안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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