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암씻김굿 보고서, 음반 발간

‘굿’은 단골(巫)의 주관 하에 신(神)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고 궂은 일, 궂은 것들을 풀어주는 행위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과 연관되어 있기에 우리 예술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평생을 봐도 다 못 볼 만큼 종류가 많고, 같은 굿이라도 여러 신을 부르면서 이루

▲ 덕진면 영보리 이씨가(李氏家)에서 소상씻김굿 연행

어지는 행위는 지방마다 이름과 절차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까다롭고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그중 전라남도에서는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해 좋은 곳으로 보내는 오구굿의 한 종류인 ‘진도씻김굿’이 가장 유명한데,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될 만큼 보존가치가 높다.

이러한 이유로 진도에서는 집안끼리 세습하며 지금까지 씻김굿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영암에도 씻김굿을 전승하고 있는 이가 있다.
지난 10일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그녀의 집에 들어섰을 때 이제 막 점심을 먹고 있는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에 죄송스런 마음을 표현했더니, 그녀는 오히려 인자하게 웃으면서 편하게 안방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녀는 바로 씻김굿 전승자, 정화점 단골이다.

▲ 정화점 무녀의 제석굿 연행

정화점 단골은 1948년 보성에서 태어나 진도씻김굿의 세습 악사인 박재성과 결혼해 지금까지 영암에 거주하고 있다. 시집오기 전에 굿을 익히지 않았던 그녀는 굿을 주관하는 단골(巫)이 여자인 세습무(巫)의 전통에 따라, 시어머니에게 굿을 배워 단골이 된 후 악사인 남편과 함께 가업을 이어 왔다.
이후 남편이 작고한 후에도 지금까지 씻김굿을 해온 그녀는 민속학자 이두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무가 연구 분석대상이 되어, 그의 저서 ‘영암씻김굿’에 그녀가 했던 소상씻김굿(망자가 죽은 지 1년 후 소상(小祥)을 지낼 때 행하는 굿)과 영화씻김굿(집안의 영화(榮華)를 위해 씻김이 필요한 조상의 넋을 위로하는 굿)에 대해 자세히 서술되면서 영암지역의 유일한 무가(巫歌) 자료를 남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영화 '이 한 몸 돌이 되어', '전설의 고향' 등에 무녀로 출연해 실제 씻김굿의 한 장면을 연기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씻김굿을 해오던 그녀에게 씻김굿 연구자 이경엽 목포대 교수는 오는 25일 개최하는 ‘2015 굿 음악 축제’에서 그녀가 하는 굿의 사회를 맡으면서 씻김굿의 한 대목인 ‘성주굿’을 하자며, 기존의 널리 퍼진 씻김굿이 아닌 새로운 ‘영암성주굿’이라는 특색을 살리자고 제안했다.
성주굿은 집을 지키는 터줏대감 성주신(神)에게 가족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굿으로‘성조(成造)굿’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전라도에서는 씻김굿이나 도신굿(성주풀이굿)을 할 때성주굿으로 시작한다.

▲ 씻김굿 전승자, 정화점 단골

정화점 단골은 이번 굿 음악 축제에서 조왕굿, 안당, 선부리, 성주굿, 지왕굿, 제석굿, 고풀이, 오방치기로 구성된 영암성주굿을 보여 새로 지은 집과 집안사람들의 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재수굿을 열고, 특히 오방치기에서는 집의 모든 액을 가져갈 허수아비를 등장시켜 굿 안에서 해학성도 돋보이게 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정화점 단골의 굿은 이두현 교수를 비롯해 국악, 국문학, 민속학의 원로 학자들에게 그 예술성과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 받고 있으며, 굿 음악 축제 일정 중 둘째 날인 26일, 학술회의를 거쳐 영암성주굿을 알릴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 후, 몸이 예전만 못하다는 정화점 단골은 “사람들은 굿을 하는 ‘단골’  하면, 대부분 ‘무당’이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린다”며, “개념과 의미가 다르다. 무속인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신내림을 받은 사람을 ‘무당’, ‘강신무(巫)’라 하며, 나처럼 영적인 힘이 없는 상태로 예술적 의미에서 대대로 가업을 잇는 사람은 ‘세습무(巫)’이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부계를 통해 수직으로 굿을 계승하는 고부세습을 하며 시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200년 된 정주(鐘)와 사슴뿔 채는 굿을 할 때 꼭 지녀야 할 악기인데, 50년 넘게 굿을 해오면서 이제는 내 분신과도 같다”며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은 진정한 예인(藝人)의 그것과 같았다.

정화점 단골의 영암성주굿을 만나볼 수 있는 ‘2015 굿 음악 축제’는 국립남도국악원에서 2013년부터 추진해온 행사로 2~3일간 개최해 남도 굿의 무대를 보여주고, 학술회의 참가자를 모집해 예인들과 대담과 가져 질의와 논평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이번 축제의 주제는 ‘영암, 강진 굿의 신명’으로, 한집안에 태어나 삶을 꾸리고 살아가며,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련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굿이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과 소망이 담긴 삶이자, 영혼을 울리고 신명 나는 세상을 열어 갈 축제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25일 오후 7시에 ‘정화점의 영암성주굿’을, 26일 오후 7시에는 ‘이봉덕의 강진씻김굿’이 펼쳐질 예정으로 국립남도국악원 달빛마당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