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시사평론가  김 갑 수

이데올로기가 우리 공동체의 삶을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1392년 조선조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시대 즉 고려시대에는 그 역할을 종교, 즉 불교가 수행했다. 물론 그 시대에도 유교적 가치관은 중시되었다. 하지만 조선의 건국이념은 종교를 배제하는 단선적인 유학적 가치관이었다. 유학은 종교가 아니다. 유학은 본질적으로는 세계관이고 가치관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념 즉 정치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했다.

조선왕조에 이어서 일제 식민지와 대한민국 시대가 전개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이 단순히 대한민국만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 분단시대, 즉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의 남북조시대로 파악하는 역사관이 단연 정확하다. 과거 우리 역사에도 지금과 같은 남북조시대가 있었다. 신라와 발해의 시기다.
분단시대는 식민지시대의 산물이다. 거슬러 식민지시대는 조선시대와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서 조선시대가 더 클까, 아니면 식민지시대가 더 클까? 시간으로 쳐서 518년과 35년이다. 물론 식민지시대가 더 가까운 데에 있기는 하다. 지금 남과 북의 역사를 조선시대, 식민지시대까지 포함하여 600여 년을 통시적으로 아우르는 역사관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두 가지 가치관은 조선의 유학과 일제·대한민국의 근대화이념이었다. 그런데 근대화이념은 이제 시대적 소임과 효능을 다해가고 있다. 하지만 유학이념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적으로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종교는 불교와 기독교가 거의 대등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종교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사소한 갈등이 있긴 하지만 아마 다른 나라 같으면 종교전쟁이라도 일어날 법한 대립적인 판도다.
그럼에도 종교분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학 때문이다. 한국의 종교는 모두 유학적이다. 한국 불교도 유학적 불교이고 기독교 역시 유학적 기독교다. 어디 이뿐인가? 한국의 보수도 유학적이지만 한국의 진보도 유학적이다. 여기에 일부 예외가 있다면 서구사대주의에 감염되어 있는 지식인들 뿐이다.

이만큼 유학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여전히 크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조선과 유학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근대화지상주의, 혹은 식민사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현대를 조선과 단절시키려고 한다. 그들은 조선을 왜곡하고 비하한다. 이것은 뿌리 없는 역사의식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은 비참한 자학사관이라는 데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