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시사평론가  김 갑 수

1876년 강화도조약 후 일본의 영향력 강화로 개화세력이 힘을 쓰기 시작했다. 1880년 조선 조정은 일본에 3차 수신사절단을 파견한다. 정사 박영효, 부사 김만식, 종사관 서광범 이하 37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에는 김옥균(1851~1894)이라는 수행원이 있었다.
그는 32세의 야심 찬 청년이었다. 요코하마에서 도쿄까지 타고 간 일본의 철도에서 그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는 일본어도 조금 할 줄 알았고 일본 사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일파였다. 그가 수신사 일행에 낄 수 있었던 것은 고종과 민씨 세력의 추천 때문이었다.

“일본이 동양의 영국이라면 조선은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
김옥균의 말은 학생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아주 감미롭게 들렸다. 그러나 사실은 허황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그는 게이오주쿠 학원장 겸 <시사신보사> 주필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눈에 들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세속적이고 예민한 논설로 일본 국가주의 문화계의 전위에 서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김옥균을 많은 일본인에게 소개했다. 일본의 저명인들은 김옥균에게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이 보기에 김옥균은 한학에도 나름 조예가 깊었는데 무엇보다 그는 다산 정약용의 조선 비판에 심취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은 김옥균을 추앙한다고 말했고 김옥균은 그것을 믿었다. 그들은 김옥균의 용모와 인품까지를 칭찬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김옥균 등의 개화파를 이용해 일본의 국력 신장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위세를 떨쳐 보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선에 인쇄기와 활자를 기증했다. 한국 최초의 신문이라 말해지는 <한성순보>는 이렇게 해서 발간된 것이었다.

이후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에 신문을 보급한 문화인으로 자신의 이력을 치장한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원으로 김옥균은 일본 외무대신 이노우에와의 회동에 성공했다. 사실 김옥균의 애초 관심은 이노우에에게 있었다. 그는 일본의 후원으로 조선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조선은 털끝 하나라도 썩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정약용의 말을 제 말처럼 써먹은 것이었다. 누구라도 조국을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국을 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제국주의자들 앞에서 조국을 비판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물론 김옥균은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은 위인이다. 그는 제국주의를 배경 삼아 조국의 권력을 잡아보려고 한 매국적 사대주의자였고 이것을 개화라는 미명으로 포장했을 따름이다. 1884년 김옥균 등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갑신정변의 폐해는 실로 막심했다.

이로부터 10년 후인 1894년 봄, 진달래가 온통 보라색으로 산을 물들이고 있는 서울 양화진 형장에서는 김옥균의 시신에 대한 육시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몸통은 한강의 물고기에게 던져졌고 그의 머리와 다리는 형장에서 얼마간 햇볕을 쪼이게 한 다음 ‘모반대역죄인옥균’이라고 쓴 휘장을 날리며 조선 8도를 순회했다. 이것은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불과 11년 전의 일이었다.
다시 이로부터 16년 후인 1910년 조선은 완전히 망해버렸는데, 조선의 망국과 함께 사면 복권된 1호 인물이 김옥균이었다. 조선총독부는 김옥균 등의 매국 개화주의자들을 끊임없이 미화하는 작업을 기획적으로 진행시켰다. 아직도 김옥균을 개화의 선구자,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은 조선총독부의 역사 공작 때문이다.

부부간에는 이혼이란 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부 사이를 깨지 않으려면 잘 났든 못 났든 감싸 안고 살아야 한다. 제 남편 제 마누라는 못 났다고 하면서 남의 남편 남의 마누라는 멋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든지, 아니면 제 남편 제 마누라에게 ‘너는 인격을 개조해야 한다’고 윽박지른다면 그 가정은 파탄날 수밖에 없다.
나라와 민족은 개인과 이혼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다. 김옥균 식의 개화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식민사관에 기인한다. 섣부른 개화주의는 이 나라 이 민족의 굴욕적인 파탄을 조장했다. 무모한 개화주의가 변신하여 위선적인 계몽주의가 출현했고 이것은 곧 오늘날 서구사대주의로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