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1427년 세종 9년 6월 12일 자 기사는 “전 지현사(현감) 서달(徐達)을 의금부에 가두었다”라는 짤막한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서달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서달이 어머니와 함께 온양에 가서 온천을 하고 오다가 신창현(현 아산)을 지나는 길이었다. 이때 고을 아전 A가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자 서달이 괘씸하게 여겨 종 셋을 보내 즉시 잡아 오도록 했다.
서달의 종들은 A가 보이지 않자 길에서 무고한 다른 아전을 하나 붙잡아 때리며 A의 집이 어디냐고 추궁했다. 마침 주변에 있던 또 다른 아전 표운평이, “당신들이 누군데 이렇게 아전을 묶어 놓고 때리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서달의 종들이 다짜고짜 표운평을 구타한 후 그를 상전 서달 앞으로 끌고 갔다.
서달은 영문을 몰라 말을 못하는 표운평을 보고, “술 취한 척하며 말을 안 하니 괘씸하다”며 종들에게 다구리를 놓으라고 명했다. 집단 구타를 당한 표운평은 다음 날 사망했다. 창졸간에 남편을 잃은 표운평의 처는 관가에 이 사건을 고발했다.
서달이 누군데 이토록 방자 무도할 수 있었을까? 서달은 판서 서선의 아들이자 영의정 황희의 사위이기도 했다. 마침 사건 현장인 ‘신창현’은 당시 우의정 맹사성의 고향이었다. 좌의정 황희는 이를 알고 맹사성을 찾아가 사위의 일을 잘 무마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맹사성은 신창현감에게 서달의 일을 잘 처리해 달라고 당부하는 서신을 보냈다. 서달의 아버지 서선은 따로 신창현감을 찾아가 서달이 외아들임을 말하며 선처를 부탁했다. 한편 서선의 사위였던 인근 대흥현감은 이 일을 무마하기 위해서 직접 뛰어 다니며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이른바 권력자들의 전방위 로비가 펼쳐진 것이었다.
서달의 외친척 강윤이 나서 표운평의 집을 찾아가 돈을 줄 테니 합의하자고 종용했다. 이미 뇌물을 받은 표운평의 형 표복만은 동생 집에 가서 고관대작들이 부탁하는데 화해하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표운평의 집안은 어쩔 수 없이 합의서를 써 주었다.
여기서부터 사건이 본격적으로 조작되기 시작한다. 조사관 조순과 이수강이 보고서를 거짓으로 꾸며서 서달의 종이 자진해서 과잉 충성하다가 죽인 걸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서달의 종이 대신 구속, 기소되었다.
감사 조계생과 도사 신기가 형조에 보고를 올렸다. 이때 형조좌랑 안숭선은 보고서를 숨기고 있다가 서달의 아버지 서선이 형조판서로 임명되자 그때서야 보고를 형조참판 신개에게 올렸다. 이 사건의 내막을 몰랐던 신개는 서달을 방면하고 종을 사형시키려고 했다.
사건 보고서가 사형 결재권자인 세종에게 올라갔다. 명민한 세종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수상한 낌새를 간파했다. 세종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를 명령했다. 어명을 받은 의금부는 재조사를 통해서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냈다.
세종은 일단 사건 조작에 연루된 최고위급인 좌의정 황희, 우의정 맹사성, 형조판서 서선 등 3인부터 의금부에 투옥시켰다. 주범 서달이 구속된 후 불과 9일 만인 1427년 세종 9년 6월 21일 자 기사를 읽어 보자.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은 관직을 파면하고, 판서 서선은 직첩을 회수하고, 형조참판 신개는 강음으로, 대사헌 조계생은 태인으로, 형조좌랑 안숭선은 배천으로 각각 귀양 보내고, 서달은 장 1백 대에 유(流) 3천 리를 속(贖)으로 바치게 하고, 온수현감 이수강은 장 1백 대에다 유(流) 3천 리에 처하여 광양으로 보내고, 전 지직산현사 조순은 장 1백에 도 3년을 속으로 바치게 하고, 직산현감 이운과 목천현감 윤환은 각각 장 1백에 도 3년을 속으로 바치게 하고, 대흥현감 노호는 장 90에 도 2년 반을 속으로 바치게 하고, 신창현감 곽규와 신창교도 강윤은 각각 장 1백과 도 3년에 처하고, 도사 신기는 장 1백에 처하였다."
지금으로 치면 총리, 부총리 포함 장관 급 5명과 시장 군수 급 8명이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은 셈이다.
조선이 좋은 나라인가 나쁜 나라인가를 논할 때 특정 사안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부정적인 사안일 경우 다른 나라에도 있었던 것이라면 이것은 조선이 나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반면 긍정적인 사안일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라면 이것은 조선이 좋은 나라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나는 지방 말단 공무원 하나가 죽은 사건에 이토록 엄정하게 처벌을 내릴 수 있었던 나라가 과연 조선 말고 지구상에 몇이나 더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