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나는 조선의 중기 이후를 4등분하여, 1)위기기 2)부활기 3)중흥기 4)쇠운기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1기 위기기는 두 전쟁,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시기로서 선조-광해군–인조가 재위한 1567년부터 1649년까지 82년 간이다.
2기 부활기는 효종-현종-숙종-경종으로 이어진 1649년부터 1724년까지 75년 간, 3기 중흥기는 영,정조가 재위한 1724년부터 1800년까지 76년 간, 4기 쇠운기는 1801년부터 1910년 망국까지로서 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이 재위했다.
이 중 조선의 위기는 일본과 청국의 외침 때문에 빚어진 일이고, 쇠운은 세도정치 때문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위기기와 쇠운기 사이에 부활기와 중흥기가 놓인다. 앞으로 이어질 논의는 주로 이 두 시기가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한 조선을 성토하기에 바쁘다. 도올 김용옥처럼 비교적 건강한 조선사관을 가지고 있는 분도 ‘조선은 임진왜란 때 망했어야 할 나라’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망했어야 할 나라’는 없다. 역사에는 ‘안 망한 나라’와 ‘망한 나라’ 둘만 있을 따름이다. 조금 양보하더라도 ‘망했어야 할 나라’와 같은 말은 이후 상태가 계속 악화되기만 하다가 처참하게 망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위기를 겪은 조선은 되살아났다. 특히 18세기 영,정조 시대에 구현된 중흥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민음 한국사』에서는 이 시기의 조선은 당시 13개 주의 독립을 선포한 미국과 비교할 때 단연 우월한 상태였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가져온 원인이 무엇인지를 공부해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앞에 언급했듯이 조선의 중흥기 이전에 부활기가 있었다. 나는 조선 역사를 다시 면밀히 공부하면서 이 부활의 시기, 즉 효종-현종-숙종 –경종의 시기가 의외로 값진 시기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체로 조선의 ‘위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이 ‘부활기’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부활기의 네 임금, 효종, 현종, 숙종, 경종은 ‘탁월한 군주’는 아니었다고 해도 각기 제 나름의 강점이 있어 정국과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네 군주는 모두 붕당 권력의 균형을 잡으며 왕권을 행사했다.
효종은 ‘북벌’을 표방하면서 국방력을 강화했고 현종은 말 그대로 인정(仁政), 즉 어진 정치의 전범을 몸소 실천한 성군이었다. 숙종은 ‘역사바로세우기’에 크게 공헌했다.
재위 기간이 5년밖에 안 된 경종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약했지만 노론들의 횡포를 꺾었고 반대 세력인 소론들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사심 없이 이복 세제(世弟) 연잉군을 끝까지 보호하여 후임자로 만듦으로써 다음 ‘영조의 시대’가 열리도록 하는 역사적 과업을 실천했다.
이 네 군주의 시대에는 공히 성리학이 강화되어 윤리기강이 바로잡혔다. 특히 이 시기에 조선 최고의 복지정책이었던 대동법이 국가정책으로 확정되었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요컨대 성리학의 강화와 대동법의 실시는 조선을 부활시킨 양대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