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1583년, 명(明)의 체제 하에 있던 건진여진의 누르하치(청 태조)가 주변의 여진족들을 통합하기 시작한다. 1592년, 명의 책봉체제에서 탈퇴한 일본이 명을 정복하겠다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했다. 2년 후인 1618년 후금의 누르하치가 명에 선전포고를 했다.
1627년, 누르하치의 후계자 홍타이지(청 태종)가 정묘호란을 일으켜 조선과 형제지약(兄弟之約)을 맺었다. 1635년,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靑)으로 하고 칭제건원했다. 이듬해인 1636년 홍타이지는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복속시켜 군신지약(君臣之約)을 맺었다. 다시 8년 후인 1644년 명은 청군에게 수도 북경이 접수되어 역사의 수명을 마쳤다.
이른바 ‘명청교체’라는 것은 이렇게 하여 이루어졌다. 이것은 동아시아 질서의 일대 격변이었다. 그리고 이런 신질서는 최소로 잡아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 (청나라가 망하기 시작한 것은 1840년 아편전쟁부터였고 완전히 망한 것은 1912년 신해혁명에 의해서였다.)
명청교체는 동아시아 정세의 패권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있다. 그것은 패권국가 명의 쇠퇴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에 있듯이 명청교체가 가시적으로 완료되기 시작한 시점은 1636년의 병자호란부터였다. 그렇기에 당시 조선이 청군에게 포위되어 농성한 남한산성은 국제적인 분쟁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으로 청의 심양과 산해관과 명의 북경 그리고 몽골, 남으로 대마도와 에도까지 1636년의 남한산성을 초미의 관심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역사학자 한영우 교수가 있다. 그는 나에게 조선문명의 우수성을 귀띔해 준 두 번째 인물이다.(첫 번째는 내 아버지) 한 교수의 저서는 30권에 이르며 그의 간판작인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1997년 초판 이래 2004년 전면개정판을 발행하고 2013년까지 통합 51쇄를 찍었다.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훌륭한 저작물인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현대사의 분단시대에 들면서 엉망 수준으로 편파적이다. 그는 조선(왕조)에 대해서는 정확하고 해박하지만 조선(이북)에 대해서는 그 반대이다.
조선(왕조)의 역사만을 한정한다면 『다시 찾는 우리역사』보다 『민음 한국사』가 낫다. 일단 이 책은 분량 면에서 총 5권으로 『다시 찾는 우리역사』를 압도하며 세기별, 분야별로 실력 있는 전공학자가 분담 집필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강하다.
『민음 한국사』에서 16세기와 17세기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부분을 저술한 학자는 한명기 교수이다. 그의 저서로는 『병자호란 1, 2』,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병자호란과 동아시아』 등이 있다. 이처럼 그는 명청교체기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다.
요즘 G2라고 하여 세계 패권질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 역시 패권국 미국의 쇠퇴에서 비롯된 일이다. G2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은 우리나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강대국들이다. 이런 정세 때문인지 한명기 교수는 언론에도 자주 출연하여 우리의 외교에 대하여 식견을 피력한다.
“청이나 명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조선이 군사적으로 상당히 약자였는데 문제는 군사적 약자가 강대국들끼리의 패권다툼에 아무런 준비 없이 말려들 경우에는 이건 우리의 의지나 의사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그 흐름 속에 빨려들어가서 침략을 받게 되는데 인조정권은 아쉬운 점이 뭐냐하면 정권을 잡은 이후에 겉으로 내세운 표방은 청나라하고 싸우겠다, 이런 표방을 했습니다.”(한명기, JTBC 인터뷰 중에서)
상당히 길게 진행된 이 인터뷰의 말미에 한명기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저는 현실외교 전문가는 아닙니다마는 역시 지금의 4강 구도에 동아시아의 격변 상태에서 외세의 입김을 불러들이는 어떤 기본적인 숙주가 북한인데 결국 미우나 고우나 북한을 어쨌든 우리가 대한민국 주도로 해서 끌고 가는 방향으로 해서 이 문제를 풀어가야 이 4강구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실망스럽지 않은가? 그는 무슨 근거로 ‘외세를 불러들이는 숙주는 북한’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참고로 이 인터뷰 기사의 타이틀은, [이슈&역사] 한명기 “한반도에 외세 불러들이는 숙주는 북한”이었다. 혹시 그는 남과 북을 반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그는 “북한을 대한민국 주도로 해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만 하면 이것은 반공소년 수준이다.
‘역사란 현재와의 대화’라는 명제는 타당하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다. 교수면 뭐하고 전공자면 뭐하고 유명학자면 뭐할 것인가?
서울이건 평양이건 남한산성이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나는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비전공자로서 전공학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역사를 말하려거든 조선시대에서 끝내라. 통일이 되어 다시 써야 할 역사라면 애초부터 쓰지를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