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자산 ‘바람’…대체 에너지 자원으로 탈바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암 활성산 풍력발전이 운영된 지 4년가량 지났지만 그에 따른 잡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풍력발전으로 인한 고통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삼호읍와 시종면 등 또 다른 지역에 대규모 풍력단지 건설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본지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8회에 걸쳐 신재생에너지의 한 축인 풍력발전에 대한 지역적 여론과 타 지역의 사례 등을 취재해 영암의 풍력발전에 대해 총체적으로 조망해 본다.

< 글 싣는 순서 >
1회 – 영암의 풍력·태양광 산업의 현주소와 실태
2회 – 새만금 해상 풍력발전의 동상이몽
3회 – 영남 알프스 영덕… 순풍만 부나?
4회 – 경주 풍력발전을 이용한 관광산업, 그리고 주민들의 삶
5회 – 제주 풍력 공유화와 바람의 가치 1
6회 – 제주 풍력 공유화와 바람의 가치 2
7회 – 해상풍력발전 메카 전남 영광
8회 – 풍력발전 갈등의 유일한 해답 ‘주민 상생 원칙

대기업 위주 개발에서 주민이익공유제로

관광의 도시이자 삼다(三多)의 도시 제주. 여자, 돌, 바람 제주의 상징적 단어이기도 하지만 이는 제주인들의 삶을 속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특히 눈에 보이지도 않고 바다를 업으로 하는 제주 어민들에게 바람은 애증의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의 바람은 훌륭한 ‘부(富)’를 창출하는 대체에너지 자원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제주지역에서 가동 중인 풍력발전단지는 최근 상업운전을 시작한 탐라해상풍력까지 포함할 경우 모두 19곳에 이른다. 이들 풍력발전단지는 제주 신재생에너지의 79%를 생산한다. 제주 신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54%로 전국평균 7.3%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이 같은 수치만 놓고 본다면 제주의 풍력발전은 제주에서 소비되는 전체 전력생산량의 9.17%를 차지하는 무시하지 못할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그중 1990년대 중반 이미 국내 최초의 풍력발전단지 상업화가 성공한 행원발전단지와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는 지금 우리지역에서 겪고 있는 풍력발전의 명과 암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지난 9일 제주도 동쪽 해안을 달리다보면 구좌읍 행원리 마을 앞으로 웅장한 프로펠러들과 마주친다. 해안가까지 도달해도 파도소리에 묻혀 프로펠러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기둥높이 45m에 날개 길이 24m로 지상 20층 높이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15기(15000㎾)가 밀집해 있는 제주도 대표 풍력발전단지이다. 행원풍력발전단지는 지난 1997년 203억원을 들여 연차 공사에 나선지 7년여 만인 2003년 4월 제 모습을 갖췄다.

행원리 바닷가 5만 6900㎡의 부지에 750㎾급 5기, 660㎾급 7기, 600㎾급 2기, 225㎾급 1기 등 총 15기 10㎿ 규모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1998년 8월부터 2006년 말까지 11만 4079㎿h의 전기를 생산해 총 74억8500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2006년 한 해에만 풍력 발전기 15기에서 1만8561㎿/h의 전력을 생산했는데 이는 약 7천~8천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 용량이다.
20여년 전 국내 최초로 조성된 행원단지는 일단, 성공한 풍력발전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이격거리, 제한 등이 없이 조성된 탓에 민가와 100m정도의 거리를 두고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행원’이라는 고유지명이 아닌 ‘풍차마을’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면서 제주의 또 다른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20년 동안 동고동락한 애물단지일 뿐이다.
한 마을주민은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아 소리가 덜하지만 밤이 되면 ‘쒝쒝’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잠을 못잘 지경이다”며 “소음뿐만 아니라 날개가 돌아가면서 생기는 그림자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껴 바람 부는 날은 바깥 출입을 자제하는 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10여명의 주민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사업초기만 하더라도 주민 투서와 민원이 끊이지 않아 한때 육상풍력 개발자체가 어려워지는 위기에도 봉착했다. 제주도는 결국 주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2011년 풍력인허가 조례를 제정하며 6개월 이내 풍력단지 개발자가 이익공유화 계획서(이하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실제로 계획서 제출은 2014년 이뤄졌다. 30㎿ 가시리 풍력단지 개발자 SK D&D, 30㎿ 김녕 제주 김녕풍력발전, 21㎿ 상명의 중부발전, 20㎿ 어음의 제주에코에너지가 첫 사례다.
제주도청은 이들 기업이 낸 계획서를 바탕으로 용역을 수행, 이익공유화 방안을 마련했다. 용역 보고서는 김길훈 제주대 교수팀이 작성했다. 2012년 7월 제주에너지공사를 설립하고 풍력발전 마을지원금의 기준을 마련했다. 제주도는 1997년 행원에 1억4000만원을 내놨고 2009년 김녕에 1억100만원, 2005~2006년 신창 1억7000만원을 지급했다. 기준이 생긴 이후 2012년 가시리 마을에 3억원, 동복북촌에 4억4000만원을 지급했다.
이외에도 각 마을의 공모를 받아 시행하는 공공주도형과 마을수익사업형 풍력발전사업도 진행한다. 공공주도형 사업엔 육상 3곳, 해상 4곳이 신청했는데 육상풍력엔 행원리, 해상풍력엔 월정-행원리, 형대-한동리, 표선-하천-세화2리가 결정됐다.
마을수익사업형에 참여하는 마을은 ‘신재생에너지 특성화 마을’로 지정된다. 마을소득사업으로 3MW 이하 1기를 설치할 수 있다. 현재 행원리, 월정리 마을 2곳이 설치해 연간 5~1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수익을 주민들에게 나누면서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가 바람을 가르고 터빈이 돌아갈 때 들리는 기계음에 대한 불만은 최소화 했다. 이마저도 앞으로 풍력단지는 대부분 1㎞ 정도 떨어진 곳에 추진되므로 소음 걱정은 더욱 없다. 여기에 제주도청의 사업 의지가 강하고, 주민들도 해상풍력에 대한 오해를 풀고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고 있다는 게 제주풍력산업의 성공 비결이다.
제주에너지공사 조원식 팀장은 “풍력발전에 대한 논란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온난화와 원자력의 방사능 오염 등 본질적이고 파괴적인 리스크에 비하면 풍력발전의 피해는 극히 적다”며 “신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현실로 인한 새로운 문제점들은 새로운 룰을 통해 컨트롤 하면 되고 그 것을 기업이 일방적으로 주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닌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발안으로 움직이고 이익이 주민들에게 환원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