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우리가 아는 암행어사 중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은 이몽룡과 박문수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몽룡은 <춘향전> 속의 허구인물이고 박문수는 영조 때의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실존 여부와 관계없이 이 두 암행어사는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각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암행어사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도학자 조광조, 이황을 비롯하여 영의정을 지낸 김수홍(현종대), 남구만(숙종대), 체제공(영조대) 등이 모두 암행어사 출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통율보>의 저자 구윤명, 정조대의 재상 심환지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정약용도 암행어사였다.
그럼에도 이 쟁쟁한 암행어사들을 제치고 유독 이몽룡과 박문수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이 이 두 사람은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아니 사실은 매력적이기 때문에 더 유명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매력은 무엇에 있는 것일까?
일단 암행어사라는 직책 자체가 매력적인 직책이다. 암행어사는 과거 문과 급제자에서도 가장 선망 받는 청요직 출신 중에서 주로 임명되었으며, 대부분이 정의감 있는 젊은 사람이었다. 또한 암행어사는 말 그대로 암행(暗行, 몰래 다님)을 해야 했기에 평소 미복단행(微服單行), 즉 허름하게 변장하고 홀로 다녔다는 점 또한 매력적인 요인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암행어사는 왕의 밀지를 받고 파견되는 일종의 비밀지방감찰관인데, 이것의 첫 번째 취지는 왕도민본정치의 구현에 있었다. 즉 암행어사는 왕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내보낸 것이었다.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백성의 고통과 억울함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암행어사의 숙식처가 관아가 아닌 주막이라야 했던 것도 바로 민의 고충을 현장에서 체험하기 위함이었다.
보통 우리는 암행어사의 주된 임무가 관청을 감사하여 부정부패를 적발하는 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암행어사의 임무는 관의 횡포로 인한 민의 고충을 구제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므로 암행어사는 출두한 후 맨 먼저 감옥부터 살피는 것이 원칙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억울한 약자를 돕는 일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
이렇게 본다고 해도 암행어사 중 유독 이몽룡과 박문수 두 사람만이 ‘발군의 암행어사’로 부각된 이유는 해명되지 않는다. 사실 이 두 사람보다 암행어사 직을 더 잘 수행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예컨대 정조 대의 심기태는 조선 최고의 암행어사로서 왕의 극찬을 받았고, 영조 대의 이성휴는 명재경각의 위기를 마패의 위력으로 멋지게 극복한 암행어사였다.
우리가 알듯이 <춘향전>은 신분이 낮은 여자가 신분이 높은 남자와 사랑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묻는 소설이다. 이몽룡은 바로 이 질문에 가장 그럴듯하게 답을 해준 인물이다. 그는 공적으로도 훌륭했지만 사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인물이었다. 여기다가 그는 유머가 출중했다. 요컨대 이몽룡은 실력 있지, 의리 있지, 더하여 유머까지 겸비했으니 거의 신화적인 매력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박문수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사실 박문수가 암행어사 직을 수행한 것은 1727~1728년, 1년 동안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암행어사라기보다는 학자 겸 재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암행어사의 대명사’ 격으로 떠올라 있다. 그의 이야기는 무수한 설화집과 야담집들에 수록되어 있다. 이 중 하나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왜 신화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로 부각되었는지를 알아볼 수가 있다.
박문수가 무주 구천동을 암행할 때의 일이다. ‘구천동’이란 구씨와 천씨만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니 당연히 구씨, 천씨의 텃새가 심했을 것이다. 야밤에 박문수는 어느 민가를 찾아들었다가 구씨, 천씨가 아닌 유씨 부자의 위급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이웃 천씨 부자가 둘이 작당해서 유씨 부자를 죄인으로 몰아 유씨 부자의 처 둘을 각각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박문수는 “내일 신시(申時) 이내로 좋은 소식을 전하리다”고 말한 후 유씨 집을 나와 야밤에 70리 길을 걸어서 무주 관가로 가서 ‘어사 출두’를 외친 후 군관 5명을 징발하여 염라대왕의 명을 받은 신장(神將)으로 변장시켜 천씨네 집을 급습케 했다.
“너희들은 천륜을 어겼으니 염라대왕의 부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신장으로 변장한 군관은 천륜을 어긴 천씨 부자를 처단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처럼 박문수는 업무를 수행하는 데 (약간의 관권을 빌렸을 뿐) 공적으로만 임하지 않았다. 천륜을 어긴 자를 관권으로만 해결한 게 아니라, 악행을 하면 하늘이 알고 응징한다는 신화적 인식을 구천동 주민들에게 심어주었던 것이다. 요컨대 박문수에게는 풍부한 상상력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공직자는 물론 공직자다워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매력은 공적 수행만으로 온전히 구축되지 않는다. 이몽룡이나 박문수처럼 사적 매력 또는 신화적 상상력이 있어야 진짜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직자라고 하더라도 ‘멋진 공작자’이기에 앞서 ‘멋진 인간’이 되는 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몽룡과 박문수가 ‘최상의 암행어사’로 부각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