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1506년 연산군을 끌어내리고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을 왕위에 앉힌 사건을 가리켜 중종반정(中宗反正)이라고 한다. 여기서 반정이란 ‘바르게(正) 되돌린다(反)’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적로 보아 ‘바르게 되돌렸다’는 말은 온당하지 않다. 중종은 바른 것을 추구한 군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중종반정은 ‘급한 나머지 바르지 않은 것(연산군)을 일단 끌어내린 사건’ 정도로 설명한다.
중종의 치세 기간(1506~1545)은 39년이나 되었다. 중종은 이른바 ‘3대장’으로 일컬어졌던 반정의 주역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에 의해 타율적으로 왕위에 앉았다. 이것은 그가 예상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던 일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서’ 왕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준비되지 않은 왕’이었다는 뜻도 된다.
이런 중종에게 국왕으로서의 포부나 국정목표 같은 것이 뚜렷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전대의 연산군처럼 쫓겨나지 않고 무사히 국왕직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모든 국정을 연산군과는 반대로 행했다. 일단 이것은 신하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국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명분과 실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의 문제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대체로 진보적인 인격은 명분을 선호하고 보수적인 인격은 실제를 선호한다. 명분은 정의롭거나 또는 대책 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수가 많고, 실제는 정의롭지 않거나 또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선택하는 수가 많다.
사람은 진보적이거나 보수적 둘 중 하나에 속한다. 이에 따라 명분을 중시하거나 실제를 중시한다. 그러나 중종은 이런 것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특이한 인격체였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중시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종은 철저히 신하들에게 의탁하면서 그들을 이용하는 수법으로 국정을 수행해 나갔다. 그는 우유부단했지만 그것은 계산된 우유부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이용해 먹던 신하가 자기에게 해롭다는 최종판단이 섰을 경우 또 다른 신하들을 이용하여 아주 냉혹하게 잘라버렸다. ‘우유부단과 냉혹함’, 그는 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진 매우 특이한 인격체였다.
중종의 치세는 크게 보아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는 반정을 주도한 대신들에게 의탁한 초기, 2기는 조광조를 필두로 하는 기묘사림에게 의탁한 중기, 3기는 희대의 간신 김안로에게 의탁한 말기였다. 결국 그는 39년이라는 긴 치세 기간을 모두 신하들에게 의탁하는 방식으로 왕위를 지켜나감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다.
중종 대 초기, 권력이 반정을 주도한 대신들에게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실제론자들이었다. 결과 그들은 곧 반정의 명분을 잃어버리고 젊은 청요직들에게 공격의 빌미와 명분을 제공했다. 그들은 차츰 약화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반정 3공신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국가 권력은 격렬한 명분론자인 젊은 청요직들 편으로 기울었다.
조광조는 명분에 있어서 따를 자가 없는 인격체였다. 중종은 조광조가 힘을 얻게 되자 그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원했다. 그러다 얼마 안 가서 더 이상 조광조를 지원하다가는 자기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최종판단이 서자 하루아침에 그를 내쳐버렸다.
불안해진 중종이 세 번째로 선택한 보호막은 김안로였다. 김안로는 조광조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인물이다. 흔히 간신이라고 하면 전대의 유자광이나 임사홍이 거론되는데 사실 김안로야말로 유자광과 임사홍을 합한 것 이상의 간신이다.
김안로에게 명분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종은 김안로를 선택하여 그에게 의탁하면서 왕위를 지켜나갔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김안로 역시 어느 날 자기에게 해롭게 되었다는 최종판단이 서자 그를 하루아침에 전격적으로 제거해 버렸다.
중종이 조광조와 김안로를 제거하는 데 사용한 수법은 비열하고도 냉혹했다. 면전에서는 상대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여 한껏 안심(또는 방심)시킨 후에 그들의 정적에게 야밤 밀지를 보내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제거해 버리는 수법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중종은 다른 신하들을 이용했을 뿐 자기가 먼저 나선 것처럼 하지는 않았다.
이런 왕을 실록의 사관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사관은 말한다. 주상은 인자하고 부드러움은 넉넉했지만 과단성이 부족해 일을 하려는 뜻은 있었으나 일을 한 실상은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치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했기 때문에 재위 40년 동안에 다스려진 때는 적었고 혼란한 시기가 많아 끝내 작은 평안의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안타깝다.”(<중종실록> 기사, 김범 저 <사화와 반정의 시대> 241쪽에서 재인용)
사관의 평가대로 중종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중종은 진보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았고 명분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실제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진짜로 추구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가 진짜로 추구했던 것은 ‘이기(利己)’ 즉 자기 이익이었다고 본다.
중종의 치세 기간은 좋은 시간도 아니었고 나쁜 시간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간은 정체된 시간이었고 그 때문에 낭비된 시간이기도 했다. 중종과 더불어 떠오르는 현대 정치인이 있다. 나는 먼저 노태우가 떠오르고 다음으로는 문재인이 떠오른다. 아마도 세 사람은 매우 유사한 인격체가 아닐까 한다. 놀랍게도 이런 유형의 사람은 의외로 다수를 차지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범부’라고 통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