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 갑 수

정창손 등 : “이는 중한 일인데 쉽게 할 수 없습니다. 불순한 자취가 드러나지 아니하였는데 갑자기 이혼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할까 합니다."
성종 : ".....대군의 성품이 본래 고집스러워 깨닫고 이해하기 어려운데, 반목(反目)함이 이와 같으니 이혼하게 아니할 수 없다."
위는 1482년(성종 13년) 12월 11일 자 <성종실록>에 실려 있는 것으로, 영의정 정창손과 성종이 주고받은 대화이다. 1482년이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534년 전의 일인데도 오늘날의 이혼 논란과 거의 다르지 않다.
먼저 여기서 ‘대군’으로 지칭되는 인물은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다. 사실 그는 왕위 계승의 1번 서열이었는데, 예종이 갑자기 붕어했을 때 4살밖에 안 된 나이라서 제외되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덧 성장하여 결혼했다가 이혼하려 하자 그 이혼의 타당성을 놓고 재상과 군왕이 논쟁하고 있는 것이다.
정창손은, 이혼이란 중한 일이고 제안대군의 부인(박씨)에게 잘못이 없는데(불순한 자취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혼을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인에게 아무 책임이 없는데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가 없다는 논리이다. 요즘 말로 해서 정창손은 유책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성종은, 남편 제안대군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미 부부 사이가 파탄 난 상태(반목함이 이와 같으니)인데 어쩌겠느냐? 그러니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는 요즘 말로 해서 파탄주의의 논리가 된다.
오늘날 이혼에 관한 두 견해,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유책주의는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제도이다. 이를 테면 부정을 저지른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엄격하게 제한해 가정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다. 이에 반해 파탄주의는 혼인관계가 사실상 회복될 수 없을 만큼 파탄 났다면 어느 배우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고 이혼을 허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1965년 9월 대법원은 혼인생활을 파탄 낸 책임이 있는 남편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유책주의를 채택한 최초 판례다.
이 판례 이후 한국 법원은 유책주의 입장을 유지해 왔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를 떠나 현실적으로 혼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면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파탄주의를 적용하자는 움직임이 계속돼 왔다. 이에 대법원은 유책주의 원칙 하에서 예외적으로 파탄주의 적용 범위를 점차 늘려왔다.
한편, 대법원은 2015년 9월 15일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생활을 깬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며 유책주의에 대한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관 13명 가운데 6명은 ‘결혼생활이 이미 파탄 났다면 실체 없는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게 맞다’는 반대 의견을 내어, 앞으로도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이상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인용
설명이 다소 길 뿐이지 오늘날의 논란이나 500년 전의 논란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성종이 사대부들의 공론과 달리 제안대군의 입장을 두둔한 데에는 개인적인 감정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종의 주장이 더 진보적이라고 본다. 아니, 진보 보수 여부를 떠나 개인별 이성 또는 가정문제를 국가가 심판한다는 데 나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지우들과 이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결혼했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이혼했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대화 중에 나는 이런 말을 유머 삼아 한 기억이 있다.
“열 쌍의 부부가 있다고 할 때, 그 중 정말 부부답게 살고 있는 부부의 비율은 의외로 적을지 모릅니다. 내 생각으로는 많아야 한 쌍 정도? 나머지 대여섯 쌍은 그저 자식 때문에 살거나 대책이 없어 사는 것이고, 또 그 나머지 서너 쌍의 부부는 ‘그저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부부가 아닐는지요?”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결혼제도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로 평생을 묶여 살아야 한다면 이런 의례는 애초부터 안 하느니만 못하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아직 ‘결혼의 덫’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결혼할 때 교환한 각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살다가 둘 중의 하나가 싫다고 하면 곧장 이혼한다’는 양해각서를 교환한 바가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