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와 김숙흥의 대활약

한편 개전 두 달에 이르자 야율문수노는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강조의 30만 주력군을 격파했으나 정작 강동6주부터 서경까지 평안도의 주요 요새들은 여전히 건재했다. 후방거점인 곽주는 양규에게 뺏겨 보급도 어려워졌다. 모든 걸 뒤로 하고 개경으로 달려갔으나 현종을 잡지도 못했다. 399년 전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고구려 영토 안에 깊숙이 들어왔다 낭패를 봤는데 거란군의 처지가 그러했다. ‘고려 정복’은커녕 오히려 고려 땅에 갇힌 쥐 신세가 될 판이었다. 결국 야율문수노는 총퇴각을 결정했다.

한편 와해되거나 여러 성에서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던 고려군이 전열을 가다듬과 도처에서 거란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중 양규와 김숙흥의 공훈은 실로 눈부셨다. 1월 17일 귀주별장 김숙흥(金叔興)은 중랑장 보량(保良)과 함께 거란군 1만 여 명의 머리를 베는 대승을 거두었다. 양규 역시 다음날 무로대에서 적을 습격해 머리 2,000여 급을 베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3,000여 명을 되찾았다. 또한 이수에서 전투를 벌여 석령까지 적을 추격해 2,500여 급의 머리를 베고 사로잡혔던 남녀 1,000여 인을 되찾아왔다. 22일에는 양규가 여리참에서 싸워 1,000여 급을 베고, 잡혀간 남녀 1,000여 인을 탈환하였는데 이날은 적과 세 번 싸워서 모두 이겼다. 28일 양규와 김숙흥은 결집하여 애전에서 거란군을 공격해 이번에도 1,000여 급을 베는 승첩을 올렸다.

그런데 불행히도 승리를 거둔 얼마 뒤에 야율문수노가 이끄는 거란의 본대가 두 사람에게 갑자기 들이닥쳤다. 양규와 김숙흥은 종일토록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병사들이 죽고 화살 또한 다 떨어졌다. 결국 진영이 무너지며 두 영웅은 전사하였는데 고슴도치 털과 같이 화살을 맞았다고 한다. 《고려사》에서는 양규의 활약을 찬사하며 이렇게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