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호합작비망록(友好合作備忘錄)’에 서명하다

11월 2일(목), 오전 11시, 만송서원 정의당(正誼堂)에서는 매우 뜻깊은 행사가 거행되었다. 정의당(正誼堂)은 청나라 때 강의나 주요 행사를 거행했던 곳인데, 한때 소실되었다가 2009년에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역사적인 장소에서 영암향교와 항주만송서원 간 우호협력이 체결되었다. 영암향교 강동하 전교(典校)를 비롯한 10여 명의 장의(掌議)들과 배석자들이 만송서원 인사들과 마주 앉았다. 그들의 다소 긴장된 표정에서 그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양측 통역들도 서로 상대측의 발언 내용을 가감 없이 전하고자 매우 신중을 기했다. 한중 상호 방문을 통한 전통문화 교류와 학습을 골자로 한 우호협력 각서에 양측 대표가 서명하여 교환하자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이에 화답했다. 서원을 떠나는 우리 버스를 배웅하는 그들의 밝고 젊은 모습에서 양측의 희망찬 미래가 엿보였다.

‘삼담인월(三潭印月)’의 서호(西湖) 유람선을 타다

만송서원과 결연(結緣)을 하고 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여세를 몰아 이제 항주의 자랑 서호(西湖) 관광에 나섰다. 서호는 만리장성, 계림에 이어 중국 3대 관광지라 하니 더욱 기대가 컸다. 서호는 원래 몇 개의 자연호수와 그 주변 산들을 막아 형성된 담수호로서 둘레만 해도 30km에 육박한다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서호는 또한 그 크기에 못지않게 다양한 볼거리와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있어 연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우리가 방문한 날이 평일이었지만 ‘화항관어(花港觀魚)’ 매표소 주변은 ‘소제(蘇堤)’를 왕복하는 셔틀버스와 인파들로 뒤섞여 매우 혼잡하였다. 이곳은 으레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조언을 위안 삼아 서호 유람선에 오른 시각은 오후 1시였다.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서호10경(西湖十景) 중에서도 ‘삼담인월(三潭印月)’이 가장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삼담인월은 서호의 가장 큰 섬인 ‘소영주(小瀛州)’ 남쪽에 있는 세 개의 석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추석날과 같은 달밤에 다섯 구멍이 나 있는 세 개의 석등에 불을 밝히면 등불과 수면에 비친 여러 개의 달빛이 어우러진 모습이 가히 절경이라 하여 그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직접 주머니에서 1위안 짜리 지폐에 새겨진 삼담인월을 보여주니 과연 서호 제일의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거이(白居易)와 소동파(蘇東坡), 그리고 임포(林逋)

서호(西湖)를 이야기하려면 서호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한중문화교류회 강원구 회장님은 그중에서, 백거이(白居易)와 소동파(蘇東坡), 임포(林逋)를 꼽는다. 백거이와 소동파가 항주 태생이 아니면서도 지방관(地方官)으로 재임하는 내내 서호 제방 건설에 매진했다면, 임포는 항주 태생으로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서호의 자연을 벗 삼아 고산(孤山)에 은거(隱居)했다는 점에서 대별된다.

백거이와 소동파는 250여 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제방 축조라는 그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를 진행하여 오늘날 이처럼 아름다운 서호를 만든 주인공들이다. 백거이는 서호 10경 중 대표격인 ‘단교잔설(斷橋殘雪)’의 백제(白堤)를, 소동파는 ‘소제춘효(蘇堤春曉)’의 무대인 소제(蘇堤)를 축조했으니 말이다. 두 사람 모두 당·송 당시 중앙정부에게는 삐딱한 인물로 비춰졌을지는 모르나, 힘들 때마다 시와 술로 시름을 달래가며 서호를 사랑했던 참 서호인(西湖人)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항주 태생의 송나라 초기 은일(隱逸)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임포는 서호에 정자를 짓고 20년 동안 한 번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으며 살았다 해서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리면서도 위 두 사람처럼 시서(詩書)에 능통했다고 하니 이분 또한 서호가 낳은 인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