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신 몸 대홍포(大紅袍)차

셋째 날 일정은 대홍포 풍경구와 오부진 관광이었다. 지난밤 ‘인상대홍포쇼’ 관람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설레는 맘으로 대홍포 풍경구에 내리니, 깊은 계곡 오른편으로 기다란 차밭이 이어진다. 보성 녹차밭처럼 웅장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척박한 바위 틈에서 꿋꿋이 지탱해온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 온다. 그래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차는 무이암(武夷岩)차라 하여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20여 분쯤 걸어 종착 지점에 이르니 바위에 새겨진 ‘대홍포(大紅袍)’ 글씨가 선명하다. 그 옆에는 모수(母樹) 여섯 그루가 바위틈에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병에 걸린 황후가 이 차를 마시고 낫자, 임금이 자신의 붉은 용포를 이 나무에 하사했다고 해서 ‘대홍포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강 원장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주희고거(朱熹故居) - 자양루(紫陽樓)

점심을 서둘러 마치고 50분 가량 달려 버스가 다다른 곳은 우리네 농촌 풍경과 다를 바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곳이 바로 주희가 살았던 동네 오부진(五夫鎭)이란다. 버스에서 내리니 깔끔하게 단장한 주희의 생가 자양루(紫陽樓)가 우리를 반긴다. 2020년에 새로 단장했음에도 주희가 14세 때부터 50년 동안 살았던 고택답게 여전히 집안 곳곳에는 그의 삶의 흔적들이 그득했다. 자양루 내부를 돌아 나오다 북쪽 담장에 새겨된 낯익은 시구가 눈에 들어온다. 주희의 낙관이 찍힌 권학문(勸學文)이었는데, 현지에서 보니 더욱 감회가 새로워 이곳에 인용해본다.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

未覺蓮塘春草夢(미각연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

주희(朱熹)와 육구연(陸九淵)

자양루에서 발길을 돌려 옛 동네 안으로 들어서니 당시 주희가 손수 심었다는 오래된 나무가 눈길을 끈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850년 세월을 실감하며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주희교류전시관(朱熹交流展示館)에서는 무엇보다 주희의 숨결이 서린 서원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인상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아호서원(鵝湖書院)에 대한 소개가 흥미로웠다. 1175년, 육구연(陸九淵)이 태극도설(太極圖說)로 대표되는 주희의 형이상학을 비판하자, 주희의 친구 여조겸(呂祖謙)이 두 사람의 이견을 좁히기 위해 아호사(鵝湖寺) 모임을 주선했다고 한다. 중국 철학사의 전설적인 논쟁, 아호지변(鵝湖之辯)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아호서원’이라 최종 명명했다고 한다. 주희의 성즉리(性卽理)에 맞선 육구연의 심즉리(心卽理) 철학은 335년 후 왕수인(王守仁)에게 전수되었다고 하니, 다음 날 가게 될 항주 만송서원(萬松書院)이 더 기대된다.

주자조상(朱子雕像)

무이산 관광의 최종 코스는 바로 주자상이었다. 안내표지판이 한글로도 쓰여져 있어 반가웠다. 2016년 12월 17일 제막된 이 조각상은 오부진 문공산 아래 위치하며, 주자선생의 71년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높이가 71척이란다. 또 석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9계단인데, 이는 9년 동안의 공직생활 봉직을 나타내며, 둘레 바닥 50미터는 50년간 오부진에서 살았던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세계 최대의 석상 계단에서 그의 공직생활을 떠올리며 단체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