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언론협동조합 대표이사 박 웅

우리들은 흔히 세금을 일컬어 혈세(血稅)라 부른다. 국민의 피를 짜내듯이 걷은 돈이란 뜻으로, 매우 소중하여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현재 영암군에서는 나락값 대폭락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대책으로 얼마의 돈을 어떤 방법으로 쓸 것인가가 뜨거운 쟁점이다. 이 문제는 조생종 가격이 상상을 초월해서 대폭락하고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둔 시점에서 영암군농민회와 (사)한국농업경영인 영암군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농업관련단체들이 전동평 영암군수와 박영배 의장을 비롯한 군의원들에게 30억 원 지원을 건의하면서부터 세간의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난 9월 20일 미암면농민회와 미암여성농민회 주최로 전동평 군수를 비롯한 정치인들과 이재식 서영암농협 조합장이 참석하고 200여 명의 미암농민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 ‘미암면 배재배 농가 비상총회’가 있었고, 9월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버스 8대 300여 명의 영암농민들이 영암군농민회의 이름으로 상경하여 정부의 변동직불금 축소반대와 재고미 해결을 위한 종합대책마련, 공공비축미 100만 톤 수매와 우선지급금 5만 2천 원 지급, 수요 초과량 조기 시장격리 등을 주장하는 외침이 있었다. 또한 10월 4일 농업기술센터에서 전동평 군수와 우승희 도의원, 박영수 부의장, 김양권 농협중앙회 영암군지부장, 이재식 이재면 김상재 이기우 김주영 박도상 조합장과 최대후 통합RPC대표, 정운갑 영암군농민회장, 조태현 한농연 회장 등이 참석하여 ‘영암군 쌀산업 발전 종합대책마련을 위한 2차 공청회’라는 이름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10월 5일 군청 2층 낭산실에서 군수 군의원 조합장 농업관련단체 등이 참석한 ‘2016년산 쌀 안정대책 추진 간담회’를 통해 예산규모인 30억 원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났고, 그 사용방법은 농업관련단체와 조합장들이 농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단일한 합의안을 도출했을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확고한 전제조건이 달렸다. 만일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에는 안타깝지만 ‘불용처리’하기로 했다.

지방세수가 반 토막 난 어려운 재정여건에서 30억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굳이 쌀이란 단일품목에 이 돈을 쓸 명분이 있는가라고 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 종사하거나 농업에 종사하더라도 쌀이 아닌 다른 작목을 재배하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구심을 품을 만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있고 냉철하게 생각해 보자.

쌀은 우리 민족의 혼과 문화가 반영된 식량주권의 핵심이다.
모자라면 언제든지 수입해서 먹을 수 있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벼가 재배되는 논은 여름철 집중호우 피해를 방지해주는 거대한 댐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전체 논의 저수량은 21억 8000만 톤으로 서울시민의 식수원인 팔당댐 저수용량의 9배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전체 다목적댐의 홍수조절능력과 맞먹는다. 또한 매년 60억 톤의 지하수를 보충해 주는 수자원 유지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밖에 농촌경관과 전통문화 보전, 수질보호 및 대기정화, 휴양 및 레저 공간 제공, 조류의 서식지 제공 등 논과 쌀산업이 가진 여러 가지 공익적 기능은 연간 3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부가가치가 있다고 농촌진흥청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쌀과 벼농사가 가지고 있는 이런 유·무형의 소중한 가치를 망각한다면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산업 기반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쌀이 아닌 다른 작목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쌀산업이 무너지면 그 파급효과가 다른 작목으로 이어져 도미노현상처럼 연속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큰돈이지만 나락값 대폭락문제에 30억 원을 쓸 정치적 명분은 충분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군민의 혈세인 세금을 쓰는 문제이니 만큼 그 사용방법과 쓸 수 있는 자격조건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방법으로는 농협통합RPC 적자해소에 7억 원, 지역농협 자체수매물량 적자해소에 8억 원, 벼재배 농가에 경영안정비 지급방식으로 15억 원을 쓰자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농협이 적자해소를 위해 15억 원이라는 큰돈을 쓸 자격조건을 갖추고 있느냐가 고민이다. 조합장들은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모두가 공감할만한 명분과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8개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뼈를 깎는 혁신과 6만 군민이 공감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 제시하지 못한다면 단돈 10원도 농협 적자해소를 위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고 주장이다. 이 문제에 대한 6만 군민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으고 싶다. 그래서 전동평 군수를 중심으로 정치인은 농업에 대한 철학 재정립과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 농협은 뼈를 깎는 혁신과 자구대책 마련으로, 농민은 품종단일화와 홍수출하 조절을 통해 2016년을 영암쌀 경쟁력강화의 원년으로 선포할 수 있길 간절히 기대하고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