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은 돌봄농업을 주목할 때

전) 영암군의원 김기천
[2023년 11월 10일 / 제438호]
영암우리신문l승인2023.11.10l수정2023.11.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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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서운하지 않을 가을비가 흡족하게 내렸다. 덕분에 대지는 안식을 누리고 갈증을 씻어낸 귀리와 밀은 싹을 틔울 수 있게 되었다. 분주한 가을걷이 끝에 통과의례처럼 입안이 헐고 극심한 몸살을 앓았지만 그럭저럭 심신의 평온을 되찾았다. 모내기를 마친 뒤,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본 나날이었다. 한 달 동안 내린 장맛비에다 맹위를 떨친 폭염에 시름이 컸으나 큰바람, 고약스런 병충해도 버텨낼 만큼만 심술을 부렸다. 창고 안은 지난해보다 헐하고 급락한 나락값이 회복할 낌새가 안 보이는데도 무사히 한 해 농사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아직은 크다.

주위를 돌아본다. 일평생 바지런한 손놀림으로 땅을 지켜온 몇몇 어르신이 쇠약해진 몸을 요양원에 의탁했고 그 중 몇 분은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셨다. 대학을 마친 젊은 조카들 몇이 고향으로 돌아온 대신 그보다 많은 청년들이 더 너른 세상을 찾아 둥지를 떠났다. 축산 농민들의 시련은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료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사이 소값은 바닥을 치고, 럼프스킨병이란 금시초문의 전염병이 만들어낸 공포로 농장문이 굳게 닫혔다. 켜켜이 쌓인 농사빚에 떠밀려 조선소로 떠난 후배는 밤마다 지난날의 농장풍경을 떠올리며 쓴 소주를 삼킨다는 소식이다. 그는 다시 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기후 위기는 일상의 평온을 위협하고 있다. 관측 이래 11월 낮기온이 가장 높았단다. 독천에서 영암읍으로 이어진 백리 벚꽃길에 때아닌 연분홍 꽃송이가 도발하듯 피어나더니 사과 복숭아나무, 길섶 들풀도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렸다. 식지 않은 가을 열기로 추수가 작년보다 열흘이나 늦어졌고 진즉 사라졌어야 할 모기떼가 소들의 몸에 흉측한 병을 옮기고 다녔다. 4월 냉해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금정의 대봉감은 수확을 앞두고 우박세례까지 받아 농민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미암 고구마 삼호 무화과도 성치 않았다. 이래저래 농민들 마음에 잔주름이 늘어만 간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삶을 통째로 전복할 이 비상한 조짐이 나는 쌀값 하락보다 더 공포스럽다.

‘돌봄농업’에 주목해야 할 때가 이르렀다고 깨닫는다. 본디 농업은 ‘돌봄’의 원형이었다. 농민은 곡식을 심고 길러 거둘 때까지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쌀 한 톨 얻기 위해 농민이 내딛는 걸음이 백 번이라지 않는가? 비단 곡식만이 아니다. 눈뜨면 올려다보는 것이 하늘이니 하늘님 마음을 돌보고, 곡식이 먹고 자랄 땅과 냇물을 돌보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매일 마주하는 이웃들의 일상을 돌보고 산다. 아침이슬과 한낮 뙤약볕, 해질녘의 선선한 바람을 마주하면서 농민은 자연스레 자연을 닮아가며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에도 성실하게 된다. 백성의 곡식을 기르는 농민은 한 끼 밥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삶에도 눈길이 미치고, 허기진 이들의 밥상에 연민한다.

농민은 돌봄의 주관자이지만 동시에 돌봄의 대상이다. 곡식과 자연, 이웃을 돌보며 얻는 보람과 자긍심만큼 이웃으로부터 끼니와 건강, 일손을 돌봄 받는 기쁨에 감동하며 산다. 말 그대로 상부상조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가족농업으로 제법 기반을 갖춘 나는 올해만 해도 크고작은 돌봄을 받으며 기운을 차리곤 했다. 진흙탕에 빠진 트렉터를 꺼내준 이가 있었고 곡물탱크에 받은 나락을 싣고 운반해준 이도 있었다. 모자란 씨감자와 모를 나눠주고 좋은 퇴비를 뿌려준 이, 처음 도전하는 콩파종을 도와준 이, 근사한 치킨호텔이란 이름의 닭장을 함께 지어준 이, 아픈 나를 대신해 과수 전정을 맡아준 이.... 홀로 쓸쓸한 고립에 빠져들 이유가 없었다. 대신 벗들과 함께 도모하면서 서로 돌보는 행복한 성취를 만끽했다.

스산한 찬바람이 들판을 할퀴는 때 농업의 미래를 톺아 본다. 많은 이들이 힘을 잃고 스러져가는 농업이 과연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회의한다. 나는 아니다. 농업은 단지 우리 백성의 밥상만 책임져온 게 아니다. 각자 따로 삶을 조장하고 무모한 경쟁을 들쑤시는 이 근본없는 세상을 멈춰세워야 한다. 그 유쾌한 힘이 돌봄농업, 농업의 돌봄정신을 다시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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