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조합을 설립하고 주변의 귀농귀촌인들과 농삿일에 관한 이러저러한 ‘낱말’을 익히면서 가장 헛갈렸던 단어가 있다. 바로 ‘보조사업’이다. 글자 그대로만 보면 주된 사업이 있고 무엇인가 부가적인 사업을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일을 하라고 보탬을 준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국가나 지자체가 농사꾼 개인이나 조합의 사업을 위해 돈을 준다는 것 자체가 생경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농기계 농자재는 물론 집을 짓거나 허물거나 포장재나 가공 설비를 사는 것 모두 요건을 갖춰 사업계획서만 잘 쓰면 돈을 준다니, 자본이 부족한 회사의 대표로서 제대로 비빌 언덕을 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보조사업 계획서를 밤새 작성하고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받아 첫 번째 보조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됐다. 2014년 전남도의 ‘자연밥상 꾸러미 사업’에 선정되어 농산물 직거래에 필요한 각종 비품과 설비 그리고 작은 두부 제조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럴 듯한 매장을 갖춘 로컬푸드 두부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데 이르렀다. 음식점을 개업한 이후에도 시설개선 사업 등 영암군의 보조사업을 통해 부족한 위생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절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건 사업을 하건 음식점을 운영하건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사업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은 언제나 자본 부족에 시달리는 영농조합이나 소상공인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매년 초 무수히 쏟아지는 보조사업을 쫓아다니기만 하면 결국 남는 건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장비들이라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때문에 보조사업을 활용하면서도 우리 조합원들 사이에 무엇인가 원칙을 수립해야 할 필요를 크게 느꼈다.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 것은 남의 돈은 살이 되지 않으니, 자립과 자조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꾸러미 보조사업도 우리가 이미 조합원들의 출자와 품앗이를 통해 꾸러미 직거래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로 선정되는 것이 가능했고, 이후에 다른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기반이 될 수 있었다. 행운이란 기회와 준비가 만나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기회란 녀석은 언제 어디서 불쑥 나타날지 모르니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녀석을 기다리자.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시설이나 장비를 지원해 주는 자본보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 조합을 운영하는데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 것은 인건비 지원사업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된 각종 청년 취업 지원 프로그램과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이 그것이다. 우리 조합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견뎌내며, 자생력을 갖게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다. 역대급 세수 부족과 사회적 기업 및 각종 인건비 지원사업을 모두 없애버린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는 철 지난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니 조금만 버텨 보자. 특히 양극화에 대한 대책으로 기본 소득 논의가 확산되면 될수록 청년 및 고용 취약 계층에 대한 인건비 지원사업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손쉬운 정책대안이 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인건비 지원사업은 법인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점은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법인 기업은 영농조합 협동조합 등 5인 이상의 구성원을 필요로 하는 형태도 있지만, 1인 주식회사로도 설립할 수 있다. 개인 사업자로 누리는 혜택이 크지 않다면 1인 주식회사로 변경도 검토할 만하다.

귀농귀촌 농촌 창업 등이 관심을 받은 지 여러 해 됐지만, 그 반대편에는 시골살이에 대한 부정적 콘텐츠들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속이 쓰린 건 왜 시골 사람들만 정부에서 직불금이니 보조금이니 돈을 퍼주고 있냐는 천박한 공격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골 농촌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럼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들은 과연 국가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고 세금만 내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해 수백조를 버는 이 들 대기업들조차 매년 정부로부터 받는 연구개발 직접 보조금만 수천억원에 이른다. 그뿐인가? 그렇게 개발된 연구성과는 해당 기업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는 법인세 인하 혜택까지 받아 2023년 ~ 2027년 대기업의 누적 법인세 감세액이 무려 24조를 넘는다. 농업 보조사업은 사업 당 1천만원 내외이거나 많아도 1억원을 넘지 않는다. 잘 준비하자. 그리고 당당히 활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