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에 짐을 풀고 보니 아담하고 편안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뒷산에서 지저귀던 수많은 새소리도 고요해진다. 저녁9시경에는 집근처 인근 식당의 네온간판 외에는 칠흑같은 어둠이 내린다. 그조차도 자정 전에 꺼지는 듯하다. 고요하고 깊은 어둠이 도회지의 밤과는 사뭇다르다. 공기의 무게도, 공기의 온도와 습도도 다르다. 공기의 맛이 다르다. 신선하고 새롭다.

5월 행사도 많았고 현장 취재도 많았던 달이다. 영암읍내를 기준으로 인근을 다녀보려는 주말계획이 비가 자주 오면서 뒤로 미루게 되었다.

5월 어느 일요일 새벽이다. ‘아아악, 아아악, 아아’ 마당에서 범상치 않은 비명이 들렸다.

몇일간 내내 내리는 빗소리를 뚫고도 들리는 비명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상황이 매우 위급함을 알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 잠시 이후 상황을 들었다. 차마 밖을 내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언가로 마당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다시 조용해졌다. 꿈인 듯도 싶고 까무룩 새벽잠이 들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서니 집주인 사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이신 소장님께서는 내게 별일 아닌 듯 집사람이 새벽에 뱀에 물려 응급실에 입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아침식사 하시라 했다.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유난스럽게 보일까 싶고, 한편으로 내가 놀라면 오히려 부담이 되실까 싶어 내색없이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몇일지나 사고 경위를 들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새벽에 기르는 강아지 ‘초코’가 유독 심하게 짖어 밖을 살피러 나오시다가 생긴 사고라 했다. 처마 밑에 들고 나면서 쓰는 우산들을 세워두는데 그중에 하나를 들어 쓰고 나왔다 주위 확인하고 안으로 들려고 우산을 접으면서 우산 내부 천장에 있던 독사가 떨어지며 우산 손잡이를 잡고 있던 오른 손등을 물은 것이다. 뱀을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뱀에 물려서 놀라 비명을 지르고 그 비명을 듣고 나온 소장님은 곁에 있던 삽으로 뱀을 잡았고, 바로 팔뚝을 끈으로 묶고 읍내에 있는 응급실을 찾은 것이다.

내용인 즉은 집 처마밑에 세워 둔 우산속에 뱀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지내는 일상의 주거공간에 말이다. 들과 산에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가까이는 예상치 못했는데 충격이었다. 나에겐 아직 일상인 듯 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진 않다.

입원중인 사모님을 병원 입구에서 잠깐 면회하였다. 독사였다고 한다. 대가리가 마름모꼴이였고, 마비증상과 열감과 통증으로 고통이 심해 보였고 몇일 사이 많이 야윈 듯했다.

외지에서 온 내가 놀랄까 걱정하고 계셨다. 귀농귀촌 선배들에게 들은 내용 중에 시골 생활에서 가장 친해져야 할 것이 벌레와 파충류라고 했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였지만 이렇게 마음의 준비 없이 맞게 될 줄은 몰랐다.

다행인 건 영암읍에 영암한국병원 응급실이 있고, 해독제를 구비하고 있으며 골든타임 안에 응급 처치 가능한 병원이 있다는 것이다. 응급상황에 바로 찾을 수 있는 응급실이 있어 안심이 된다. 사모님은 퇴원후 후유증없이 일상을 회복하셨지만 난 비 오는 그날 새벽의 트라우마로 작은 랜턴을 구입해서 밤이고 새벽이고 주위를 살피는 이상 증상이 생겼다. 사모님은 퇴원 후 컨디션을 잘 회복하면서 일상을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