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영암군 군서면 소재 군서농협 구림창고 앞마당.

일정하게 열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쌓아놓은 조곡용 톤백 사이사이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영암지원 검사관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특등, 1등급 등의 등급을 매기고 있었다. 

영암에서는 지난 7일 영암읍 영암농협 창고를 시작으로 수매한 공공비축미 포대 건조벼의 품질검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지난 9일에는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농관원 영암지원 검사관들이 함께 입회해서 보조원과 함께 긴 쇠막대를 이용해 포대에 쌓여져 있는 벼의 밑바닥까지 벼알의 품질을 꼼꼼히 검사했다. 

박유미 조사관은 “오늘은 군서농협 구림창고에서 800kg 톤백으로 300개 수량을 검사할 예정이다. 오전에는 160개 수량을 검사했다”며 “올해 군서 벼 품질은 지난해와 비교해 태풍 등의 날씨 영향으로 인해 벼 미질이 좀 낮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양호한 편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조사관들과는 달리 톤백으로 포대용 벼를 창고에 들여오고 있는 농민들의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고, 밖에서는 연달아 담배만 피고 있었다. 

구림면에서 2만 6400㎡ (약8000평) 규모로 벼 농사를 짓고 있는 최규온씨는 “이번에 80여 포대를 구림 창고에 갔다 놓았는데 모두 특등 판정을 받았다”며 “하지만 지난해에는 한 포대당 특등기준으로 약 7만 4000원 가량을 받았는데 올해에는 어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지난해하고 비슷하게 받는다면, 혹시 좀 더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농약값이나 농기계 수리비, 인건비를 제외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최 씨는 “매년마다 벼값이 다른 농작물에 비해 매우 낮게 책정돼 벼농사를 고생해서 지어도 보람이 없다”며 “마을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이 드신 어르신이 대신 농사를 지어달라고 했지만 인건비도 나올 것 같지 않아 거절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 올해 40kg 조곡으로 500가마를 생산한 군서면 최모 씨는 “공공비축미로 특등이나 1등급을 받으면 머하냐”며 “이번 정부는 쌓아놓고 저장해 놓은 쌀들을 가을 시즌에 시장에 내놨는데 이것이 오히려 쌀값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 정부가 보조금을 늘려 우리 농민들의 걱정을 좀 덜어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낭주농협 덕진 용산 창고에서도 공공비축 건조벼 수매를 하기 위해 건조벼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많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을 방문한 대다수의 농민들은 45년 만의 쌀값 최대 폭락 속에 각종 근심과 걱정이 가득 들어찬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1년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다는 마음으로 좋은 등급 판정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농민은 톤백으로 20포대를 내려놓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한 농민은 “농기계나 각종 자재들, 비료가격은 다 가격이 올랐는데 유독 쌀값만 폭락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앞으로 살길이 매우 막막하다”고 염려했다. 

이어 “자식이 귀농해 벼 농사를 지으러 온다고 하면 우리 같은 늙은이야 그럭저럭 살아가면 되지만 젊은이들은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 최소한의 생활 유지를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는 다음달 말까지 영암서 생산한 공공비축미 산물벼 2676톤, 건조벼 2만 1002톤 등 40㎏ 기준 총 2만 3678톤의 품질을 검사할 예정이다. 영암군은 올해 우선지급금은 매입 직후 포대(40㎏·조곡)당 3만원을 선지급하고, 최종 정산은 벼 수확기(10월 ~12월)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을 조곡(40㎏)으로 환산한 가격을 기준으로 12월 말 확정해 지급한다. 

한편, 지난 7일 첫 수매 현장인 영암읍 수매장을 방문한 우승희 군수는 생산 농가 및 수매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의견을 청취하며 “쌀값 하락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슬땀으로 벼를 수확한 농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전년 대비 생산량은 줄어들고 쌀값은 하락해 농가들의 시름이 깊다”며 관계기관의 협조와 수매장 안전사고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