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를 널리 알리고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에 힘써왔던 (사)왕인박사현창협회가 2021년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왕인박사 출생설의 배경에 대해 학술적 연구 보고를 진행했다. 

지방자치 시대에 맞춰 자치단체마다 콘텐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위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은데 비해 논증이 부족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근거가 부족한 단순한 가설만으로, 또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도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이러한 콘텐츠들로 인해 소요되는 자원과 시간 낭비는 미래동력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역사는 가설이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왕인박사에 대한 고증 연구와 조사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학자들의 연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설령 영암이 아닌 충남 공주, 부여로 확인이 될지라도 굳건히 연구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영암우리신문은 이러한 연구에 대해 지역민들이 함께 알아갈 수 있도록,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함께 2021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통해 밝힌 영암 출생설의 배경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30~40년대 왕인박사 상징물 건립 추진 - 식민지 조선을 중심으로 - (7)

- 차례 -
Ⅰ. 머리말
Ⅱ. 1910~20년대 영암 지역과 국내 사정
Ⅲ. 1930년대 왕인박사 상징물 건립 구상
Ⅳ. 1940년대 왕인박사 상징물 건립 추진
Ⅴ. 맺음말

<지난호에 이어>

⑵ 매원(梅園) 조성

매화나무는 한반도 남부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다. 그래서 부여(扶餘)에도 매화나무가 우거진 매림(梅林)은 일찍부터 있었을 터이다. 다만 그것을 왕인박사와 관련지어서 부여의 특정 지역에 일부러 매화나무 공원, 즉 매원(梅園)을 조성한 것은 1942년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앞에 소개한 정교원(鄭僑源, 창씨명은 烏川僑源)이 1937년 충남지사 부임 직후에 부여(扶餘)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미 “시부사와[渋沢] 자작(子爵)이 일본에 논어를 전한 왕인박사(王仁博士)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기증한 매림(梅林)”을 그가 직접 보았다고 1941년 5월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회상하였다.

1937년은 정교원이 말하였듯이, “부여신궁(扶餘神宮)의 조영(造營)이 앙출(仰出)된 1939년 3월 8일”보다 약 2년 전에 해당하므로, 1937년 정교원이 찾아간 매림(梅林)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인이 되지는 않지만, 아래에서 소개할 1942년 이후 조성된 매원(梅園)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아무튼 부여(扶餘)에 매원(梅園)을 조성하는 일도 위에서 설명한 건비(建碑)와 연계되어 추진되었다. 예를 들면 1942년 9월에는 “부여사적현창회(扶餘史蹟顯彰會)가 금강(錦江) 선착장에서 부여신궁(扶餘神宮)의 바깥 입구[表鳥居]에 이르는 거리에는 고려버들을, 그리고 낙화암(落花岩), 수북정(水北亭), 부도(浮島), 세 곳에는 쓰타(담쟁이덩굴? 蔦?-인용자주)를 심기 위하여, 각각 묘목을 기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충남 산림과(山林課)에서도 10,000평의 매원(梅園)을 마련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1943년 2월에도 부여사적현창회가 남산령(南山嶺)의 서쪽 산록의 일대 10,000평을 골라서 매화나무를 심는 조림 계획을 세웠다. 충남 도내 청년대가 봉사 작업을 하여 그해 봄부터 매화나무의 식목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왕인박사가 일본에 유학(儒學)을 전했을 때 매화를 가지고 갔었고, 매화를 읊은 노래도 일본에 전해지고 있으니, 그것을 기리고자 기념비 주위에 왕인박사와 인연이 깊은 매화를 심었다.”고 당시 신문은 전한다. 

⑶ 도로명(道路名) 개명

부여(扶餘)에 왕인박사비(王仁博士碑)가 세워지게 되자, 부여 시가지의 도로명도 이름을 바꾸었다. 공교롭게도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 이후 약 25년이 지난 뒤인 1944년 3월 1일 다음과 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부여의 성지에 영월정(迎月町, 게이게쓰쵸), 왕인판통(王仁坂通, 와니 자카도오리)」이라고 제목을 붙인 기사는 부여에 새로운 지명(地名)과 도로명(道路名)이 등장한 사실을 이렇게 전했다. 

내선일체의 역사도 그윽한 부여의 수도에 신궁 조영을 시작하여 이제까지 5년, 드디어 올해 10월에 신전의 상량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신궁 조영과 ‘호테후’(法定?)를 합쳐서 부여의 마을을 깨끗이 정리하고 있는 바, 이미 일부에서는 공사를 시작하고 있는데, 각 마을의 이름도 고쳐서, 영월정(게이게쓰쵸), 송월정(소게쓰쵸), 왕인판통(와니자카도오리) 등, 그 이름도 그윽한 이름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부여신궁(扶餘神宮)의 조영(造營)을 계기로 하여 부여의 마을을 깨끗이 정리하고 있다고 하면서, 마을 이름도 새롭게 영월정, 송월정, 왕인판통 등으로 개명(改名)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게이게쓰 쵸[迎月町, 영월정], 소게쓰 쵸[送月町, 송월정], 와니 자카 도오리[王仁坂通, 왕인판통] 등이 그것인데,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앞으로는 지명과 도로명을 일본식으로 고치겠다는 정책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어 음(音)으로 쵸(ちょう), 훈(訓)으로는 마치(まち)라 읽는 정(町)은 일본 고유의 행정 단위, 마을 단위의 하나이다. 통(通)은 일본어로 도오리(とおり)라고 읽는데, 도로명에 들어가는 낱말 중 하나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전남 송정리에서 영광으로 가는 길’을 가리켜 ‘영광통’이라고 부른 일본식 도로명이 아직도 일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1944년 3월 시점에서 부여의 어느 비탈진 길에 붙일 일본식 도로명(또는 지명)을 ‘와니[王仁] 자카[坂] 도오리[通]’로 정한 것을 말한다. 사람의 성씨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創氏改名)처럼 도로명(또는 지명)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한 셈이다. 여기에서 ‘왕인(王仁, 와니)’이 들어가게 된 까닭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왕인박사를 상징하는 비(碑)를 부여에 세워서 ‘내선일체’를 더욱 강화해 나가려 했던 일제(日帝)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3. 광복(光復) 후 부여(扶餘)의 상황(1945년 8월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한국은 광복(光復)을 맞이하였다. 그 뒤 2년이 지난 1947년 11월 시점에서 부여(扶餘)의 상황은 어떠하였을까? 한성일보 강영수(姜永壽) 특파원이 부여에서 취재하여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부여신궁(扶餘神宮) 부지로 편입되는 바람에 토지를 강제로 수용당하고 주택을 억지로 철거당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입장에서는 기대했던 부흥은 이루어지지 않고 황폐될 대로 황폐된 당시 현실이 크게 불만이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신궁(神宮) 재산의 처리 문제가 1947년 11월까지도 부여 지역의 최대 현안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전하는 기사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扶餘서 本社 특파원 姜永壽 發】

지난날 123년 동안의 찬란한 백제(百濟) 영화의 보금자리었던 부여(扶餘)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하염없는 꿈을 실은 평제탑(平濟塔)의 그림자 속에서 千여 년 동안 황량(荒凉)의 一로를 거닐어 오다가 급기야 해방 직전 소위 부여신궁(扶餘神宮) 건조 계획으로 말미암아 토지는 강제로 수용되고 주택은 억지로 철거된 다음 미처 부흥을 보지 못하고 황폐될 대로 황폐된 현실에 즉면하여, 경제적 피해는 이로 말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8.15 직후 동 지방민들은 이 억울한 실정을 참삭하여서 전 부여신궁 재산을 교육사업에 활용하도록 군정 당국에 루차 절충한 결과, 군정청 지방과(地方課)의 알선 아래 1946년 2월 23일 대전물자영단(大田物資營團)으로부터 부여와 강경(江景)에 있는 동산(木材製材機 등) 전부를 26만 3천 7백 36원에 불하 받았다.

이어서 동 재산을 기초, 동년 9월 20일부터 부여공립중학(扶餘公立中學)이 정식 인가되어 현재 8학급 4백 8십 명의 생도를 수용하고 있는 한편, 매년 4학급씩 증모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4월 돌연 전기 신궁 재산 매매를 취소하다는 통지가 있어, 루차 요로에 절충하였으나, 아직 해결을 짓지 못하고 있어서, 부여중학의 운명은 사활의 기로에서 해매고 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불순한 책동도 끼어 있다고 하니, 하루빨리 정당한 해결이 요망되고 있다.

한편 호남 교통의 간선인 부여와 장항(長項) 연결하는 규암진(窺岩津)의 백제교(百濟橋)가 지난 해 홍수에 떠나간 뒤로 금년도 예산에 게상(계상?-인용자주)된 동 가교비(架橋費) 5千 만원이 삭제를 당하여서 산업 치안 각 부면에 걸쳐 커다란 지장을 가져오고 있다. 또 몽리 구역이 3千 정보에 달하는 금천 개수 공사(金川漑水工事)가 예산 부족으로 난관에 부딪치고 있어서 동 지방 식량난 해결에 애로화 하고 있다.

현재 동 군수 한상현(韓相賢)씨 등의 비상한 노력으로 부여사적현창회(扶餘史蹟顯彰會)가 재조직 되는 한편, 동 지방의 닉(낙?)세 만회에 힘쓰고 있으나, 현재 앞에 가로 질려 있는 난문제의 급속한 해결을 기다리지 않고서는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에 직면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