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댕긴께 좋소야…집에 가만 있응께 징합디다”

이른 아침, 80이 다 된 노부부가 사이좋게 군내버스에 오른다.
한껏 들뜬 표정의 노부부가 향하는 곳은 학교다. 3월 2일, 바로 오늘은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노부부는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바로 얼마 전 ‘초등 문해 학력 인정 프로그램’을 통해 초등학교 학력을 얻은 노부부는 중학교 과정까지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군서면에 살고 있는 정백안(79세), 서경임(74세) 부부는 오늘부터 만학도들의 배움터인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로 등교한다. 시장에서 생선을 팔며 2남 1녀를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출가시킨 이들 노부부는 이제는 큰 욕심 없이 공부를 소일거리로 삼아 살고 있다.

“학교 댕긴께 좋소야. 집이 가만 있응께 징합디다. 이렇게 댕기고 구경항께 참말로 좋소”

정백안 씨는 지난달 초등학력 졸업 이후 보름여 만에 학교에 나가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 더군다나 한 평생을 함께해준 아내와 함께라서 더욱 그러하다.

부부가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초등문해프로그램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은 4년 전이다.

정백안 씨는 처음에 공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글을 모르고서도 자식들 잘 키우고 평생을 잘 살아왔는데, 이 나이에 힘들게 배워서 뭐하냐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암읍장과 해남읍장을 돌며 30여년 생선을 팔고 있는 아내 서경임 씨가 한글공부를 하고 싶다고 학교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던 그에게 서경임 씨가 던졌던 한 마디는 그를 움직였다.

“당신 안 가면 나도 안 가겠다”

평생을 함께 고생하고 살아온 아내에게 늘 미안함이 가득했던 정백안 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학교길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수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정백안 씨도 막상 학교에 나와 공부하다 보니 여간 잘한 결정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부부는 똑같이 세 살에 부모를 잃고 서럽게 살아왔다. 남편 정백안 씨는 군서면에서 세 살에 부모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며 살다가 중매로 서경임 씨를 만났다.

삼호읍 출신인 아내 서경임 씨 역시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 이름도 호적도 없이 ‘천둥이’로 살았기에 마을에서는 ‘천둥이’라고 불렸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당시 마을 이장은 이름과 호적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때 1951년 생으로 잘못 올리는 바람에 지금껏 그대로 살고 있다.

서경임 씨는 당시 마을 이장이 생일과 이름을 면사무소에 올리고, 동네 아이들에게 해주었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가슴 깊이 남아있다고 한다.

“얘들아, 이제 ‘천둥이’가 아니고 ‘경임’이다. 경임이라고 불러라”

경임 씨는 “그때는 철이 없어 이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생각할수록 고마운 분이다”며 마음을 전했다.

고마운 분들이 많다는 서경임 씨는 초등문해교육프로그램을 졸업하던 날, “눈을 뜨게 해준 너무나 고마운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서 편지를 써 학교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초등문해프로그램은 3년짜리였지만, 공부에 욕심이 생겼던 정백안 씨는 4년을 다녔었다. 75세에 초등 1단계를 시작해 매년 2단계, 3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갔는데, 3단계 초등과정을 마친 후에도 자신감이 부족하다며 3단계를 1년 더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큰 결심을 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로 했고 오늘 입학식을 하러 가고 있다.

정백안 씨는 “영어, 수학은 한 개도 모르겠고 국어를 배워서 좋다. 글을 알게 되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면서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자식들이 모두 와서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 줄 것인데 아이들이 못 온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가 무서워 꼼짝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백신 3차까지 접종하고 마스크로 꽁꽁 싸매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너무 즐겁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함에 손발을 다해 표현했다.

한편, 정백안·서경임 부부가 다니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만학도 어르신들의 배움터이다. 올해로 개교 61주년을 맞이하는 학교에 입학한 만학도 어르신들은 지난 2일 입학을 기점으로 2년 과정의 학교생활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현재 총 419명의 어르신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