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를 널리 알리고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에 힘써왔던 (사)왕인박사현창협회가 2021년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왕인박사 출생설의 배경에 대해 학술적 연구 보고를 진행했다. 

지방자치 시대에 맞춰 자치단체마다 콘텐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위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은데 비해 논증이 부족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근거가 부족한 단순한 가설만으로, 또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도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이러한 콘텐츠들로 인해 소요되는 자원과 시간 낭비는 미래동력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역사는 가설이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왕인박사에 대한 고증 연구와 조사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학자들의 연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설령 영암이 아닌 충남 공주, 부여로 확인이 될지라도 굳건히 연구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영암우리신문은 이러한 연구에 대해 지역민들이 함께 알아갈 수 있도록,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함께 2021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통해 밝힌 영암 출생설의 배경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30~40년대 왕인박사 상징물 건립 추진 - 식민지 조선을 중심으로 - (3)

- 차례 -
Ⅰ. 머리말
Ⅱ. 1910~20년대 영암 지역과 국내 사정
Ⅲ. 1930년대 왕인박사 상징물 건립 구상
Ⅳ. 1940년대 왕인박사 상징물 건립 추진
Ⅴ. 맺음말

<지난호에 이어>

아무튼 1925년 충남지사 석진형의 ‘부여 왕인신사 창건’ 구상보다 6년 뒤이기는 하지만, 1931년 공주군이 ‘왕인 사당’과 ‘왕인 박물관’을 공주에 건립하려는 계획(또는 구상)이 존재하였음은 확인된다. 다만 그 뒤 부여로 관심이 집중되면서 공주군의 이 계획(구상)은 끝내 추진되지 못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2. 영산포 일본 불교 본원사(本願寺)의 왕인박사 동상 건립 시도(1932년)

아오키 게이쇼[靑木惠昇]는 일제 강점기에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포에서 활동한 일본인 승려였다. 앞의 공주군보다 1년 늦은 1932년에 그는 왕인박사 상징물(동상)을 세우려는 ‘구상’을 내놓았다. 아오키의 이런 구상에 대해서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알려졌다.  

예컨대 사단법인 왕인박사현창협회가 1986년 10월 발행한 『성기동(聖基洞)』 창간호 76쪽을 보면, 이에 관한 짤막한 언급이 보인다. “박광순(朴光淳)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과 일본에서의 왕인박사 관계 자료목록을 원문과 함께 실었다.”고 하면서, 왕인박사의 영암(靈巖) 구림(鳩林) 탄생과 관련되는 자료의 하나로 「王仁博士銅像建設目論見」(靑木惠昇 キ〇〇, 昭和七年(1932년) 五月 七日夕, 全南 榮山浦 本願寺)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목론견(目論見)이란 일본어 ‘모쿠로미’를 한자로 적은 것인데, 이는 ‘계획’이나 ‘의도’의 뜻이다. 다만 『성기동』 창간호에서는 1986년 2월 간행한 『영암 왕인유적(靈巖王仁遺蹟)의 현황(現況)』 출간을 소개하려는 차원이어서, 이 ‘계획’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다루지 않았다. 

‘왕인박사 동상 건립 계획’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내용은 『영암왕인유적의 현황』96쪽과 97쪽에 실려 있다. 일본어로 작성된 취지[趣意]와 함께, 견적의 세부 내용과 금액, 그리고 동상 모습을 손으로 스케치를 한 듯한 그림이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총 소요 예산을 10,000엔[円]으로 추산하고, 이 가운데 설계 도안 등에 500엔, 동상 약 5,000엔, 기석(基石) 약 2,500엔, 부지 매수 등 기타 약 2,000엔이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동상의 크기는 기석(基石)이 2丈 5尺(25척, 약 757㎝), 동상 자체를 1丈 5尺(15척, 약 454㎝) 정도로 구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아래 그림 참조). 

그런데 ‘영산포 본원사(本願寺) 아오키 게이쇼[靑木惠昇]’의 이름으로 1932년 5월 7일 석양에 작성하여 발표한 것으로 보이는 ‘왕인박사 동상 건립 취지문(계획)’은 현재까지도 이 정보밖에 알려진 것이 없어서, 이 자료를 언급한 기존의 연구에서도 그 이상의 내용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실제로 얼마나 모금이 되었으며, 언제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필자가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춘계 선생(春溪先生)께 ‘1986년 당시에 소개한 자료(王仁博士銅像建設目論見)의 출처(出處)’를 여쭤보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하셔서 매우 안타까웠다. 

아무튼 1932년 5월 시점에서 아오키 게이쇼라는 일본인 승려가 영산포를 거점으로 포교 활동을 하면서, 영산포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신도나 사업가를 대상으로 모금을 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왕인박사 동상을 세우겠다고 ‘구상’을 한 적이 있었음은 이 문건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아오키 게이쇼[靑木惠昇]는 어떤 인물인가? 그가 영산포에 온 것은 언제인가? 그는 언제까지 영산포에서 거주하며 포교를 하였을까? 이런 궁금증을 가질 만한데, 아직까지는 이 점을 문헌에 기초하여 밝힌 연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도 아래에서 소개할 조선총독부 관보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1926.11.20.)를 보면 총독부에 제출된 포교계(布敎屆)를 확인할 수 있다. 총독부는 포교규칙(布敎規則) 제2조에 근거하여, 조선에서 종교 활동을 하려는 사람에게 포교계를 제출하도록 법으로 강제하였다. 그래서 아오키 게이쇼 역시 총독부에 포교계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을 터인데, 위 관보에 따르면 제출 일자가 1926년 10월 1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포교계를 제출할 때는 소속 교단과 종파, 주소 등을 함께 제시하게 되어 있었는데, 아오키 게이쇼는 그 자신을 신슈 오타니파[眞宗大谷派]라 하였으며, 주소지를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면 영산리 168’로 적었다. 

『조선총독부 관보』(1926.12.2.)에는 포교 담임자 변경계(變更屆)가 실려 있다. 이것은 “신슈 오타니파 본원사(本願寺) 영산포(榮山浦) 포교소(布敎所) 담임이 다카키 히토시[高木等]에서 아오키 게이쇼[靑木惠昇]로 변경되었음”을 총독부에 신고한 것이다. 영산포 포교소의 소재지와 새 담임자인 아오키 게이쇼의 주소지가 모두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면 영산리 168’로 같다. 이것은 1926년 12월 시점에서 영산포 포교소의 담임자(주지)가 바뀌면서, 아오키 게이쇼가 그때부터 이곳의 주지가 되었음을 말해 준다.

이것을 보면 아오키 게이쇼가 일본 불교 신슈 오타니파[眞宗大谷派] 승려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오키 게이쇼가 총독부에 신고한 주소지를 통해서도, 그리고 그가 새 담임자[주지]가 되었을 때의 주소지를 보더라도, 그가 영산포에서 포교 활동을 하였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그가 영산포에 온 것은 1926년 10~12월 무렵으로 짐작되며,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뒤인 1932년 5월, 왕인박사 동상을 세우겠다는 ‘구상(또는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뒤 총독부 관보에서 아오키 게이쇼에 대한 기록은 상당 기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44년에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그의 모습이 관보에 등장한다.  
『조선총독부 관보』(1944.7.1.)에 사원(寺院) 설립 허가(創立許可)가 실려 있다. 그런데 그 명칭은 ‘신슈 오타니파[眞宗大谷派] 심광사(心光寺)’라고 적혀 있다. 종파는 그 전과 동일하다. 그런데 절의 명칭이 본원사(本願寺) ‘영산포 포교소’였는데, 1944년 시점에서는 그것이 ‘심광사’로 바뀐 점이 달라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절의 주소지가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포읍 영산리 168번지’로 적혀 있어서 퍽 흥미롭다. 심광사의 설립 허가가 이루어진 시기는 1944년 6월 26이었다(1945년 8월 光復보다 약 1년 전에 해당). 

『조선총독부 관보』(1944.12.8.)에도 주목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때 총독부에 신고된 바에 따르면, 1944년 10월 31일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포읍 영산리 168’에 주소를 둔 ‘심광사’의 신임 주지[주직]로 아오키 게이쇼가 ‘이동’ 했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전에는 이곳이 본원사(本願寺) 영산포 포교소였는데, 이제는 거기에 ‘본원사’라든가 ‘포교소’라는 말이 모두 빠지고 ‘심광사’라는 세 글자만 적혀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그곳의 주지는 아오키 게이쇼라는 동일 인물인데도, 그가 ‘새로 이동(취임)했다’고 총독부에 신고한 것으로 이해된다. 일본 절의 명칭만 바뀐 것인지, 왜 그렇게 바꾼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일제(日帝)가 연합국에 항복 선언을 하기 불과 8개월 전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1945년 8월 이후 아오키 게이쇼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지만, 더 이상의 기록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