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를 널리 알리고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에 힘써왔던 (사)왕인박사현창협회가 2021년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왕인박사 출생설의 배경에 대해 학술적 연구 보고를 진행했다. 

지방자치 시대에 맞춰 자치단체마다 콘텐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위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은데 비해 논증이 부족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근거가 부족한 단순한 가설만으로, 또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도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이러한 콘텐츠들로 인해 소요되는 자원과 시간 낭비는 미래동력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역사는 가설이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왕인박사에 대한 고증 연구와 조사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학자들의 연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설령 영암이 아닌 충남 공주, 부여로 확인이 될지라도 굳건히 연구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영암우리신문은 이러한 연구에 대해 지역민들이 함께 알아갈 수 있도록,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함께 2021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통해 밝힌 영암 출생설의 배경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근대 이전 왕인박사 영암 출생설의 배경 (4)

- 차례 -
Ⅰ. 머리말
Ⅱ.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몇 가지 문제
  1.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연구사적 검토  
  2. 고려 명종 때의 문인 金克己의 시문 분석
  3. 王仁과 道詵의 탄생 설화
  4. 道詵 入唐說의 문제와 月嶽山 聖人
Ⅲ. 잊혀진 전설의 史的 복원 : 王仁의 渡倭와 荒田別 
Ⅳ. 맺음말

<347호에 이어>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에서 그 전거로 제시한 현전 「도갑사 도선국사비」는 인조때의 문신 이경석(李景奭) 등이 찬술한 것으로서 1636년(인조 14년)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1653년(효종 4년)에 완공된 것이다. 비의 음기를 지은 鄭斗卿(1597~1673)은 당시의 상황을 ‘절에는 도선 국사의 비가 있는데, 어느 시대에 처음 세운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비문은 이미 마멸되었는데, 옥습(玉習)이란 중이 중각(重刻)한 것이 있으며, 백헌(白軒) 이상국 경석(李相國景奭)이 명(銘)을 지었다’고 하였다. 본래 도갑사에 있던 비문은 마멸되어 글자를 알 수 없어 다시 세운 것으로서, 현재 도갑사의 「도선국사비」의 명문은 다시 작성된 것으로서, 동 명문의 지명은 1636년 건립 당시의 그것을 반영한다고 본다. 사실 현재 聖基洞의 전신 지명으로 ‘聖起山僻村’은 1653년에 건립된 「도갑사 도선국사비」에 처음으로 등장하거니와, 聖起山이란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된 1530년(중종 25) 이후로부터 도갑사 도선국사비가 건립된 1653년 사이에 등장한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이후 李夏坤(1677~1724)의 『頭陀草』(18책)에 실린 「南遊錄」에서는 聖基洞, 聖基峰 등의 명칭이 처음으로 보이거니와, 聖起山이 聖基峰으로 바뀌면서 聖基洞이란 지명이 비로소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 鳩林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비둘기가 와서 날개로 이를 덮고 있었다’는 전설만을 소개하였던 것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러 ‘비둘기와 수리가 와서 날개로 덮고 있었다’고 하여 ‘수리’의 화소가 추가되면서 ‘구림(鳩林)’ 또는 ‘비취(飛鷲)’라는 지명이 비로소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구림의 지명은 도선의 탄생설화에 보이는 비둘기의 화소로 말미암은 것이 분명하며, 그것은 『세종실록지리지』(1454)로부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이르는 시기에 생성된 지명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이 聖基洞이나 鳩林의 지명은 도선의 탄생설화와 관련하여 17세기 중엽~18세기 전반에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에 있어서 「옥룡사 선각국사비」에서 구슬을 먹고 임신하였던 것이, 최씨원의 오이로, 다시 강가의 오이로 화소가 바뀐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전승의 변이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화소가 오이로 변화하면서도 수미선사의 경우 종전의 구슬을 먹어 잉태하였다는 전승을 유지한 바, 영암지방에 두 계열의 탄생 전승이 함께 전해져 왔던 것이 아닌가 한다. 

4. 道詵 入唐說의 문제와 月嶽山 聖人

「玉龍寺 贈諡先覺國師」에는 도선의 입당 기사가 보이지 않고, 다만 이인을 만나 음양오행설을 연구하여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는 내용만을 전한다. 다만 도선이 당에 건너가 일행의 地理法을 익혔다는 것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고려 말 金敬叔의 『周官六翼』에 그러한 내용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一行 선사는 도선국사가 태어나기 100여 년 전의 인물로서 시간 차이가 있고, 선각국사비에도 도선의 입당 사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에, 도선이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왔다는 전승은 도선의 스승인 惠徹(784~861) 스님의 入唐 사실과 뒤섞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이 도선 국사가 鳩林에서 태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속성이 최씨가 아니고 김씨이며, 어머니 성도 최씨가 아니고 강씨라는 점, 그리고 일행 선사와의 전승에 착간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도선국사 전설이 왕인박사의 전설이나 사실을 이어받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선국사의 전승이 후대에 왕인전설로 투영되었는가, 아니면 왕인전설이 도선국사의 전설에 투영된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許穆(1595~1682)이 「月嶽記」에서 ‘월악산(月嶽山)에 들어가 도갑사(道岬寺)를 유람하였는데, … 산중의 기이한 유적이 모두 도선에게서 나온 것이라 한다’고 일렀듯이, 왕인 관련 문헌적 전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자의 주장이 유력해 보인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김극기의 시에서 옛날에 海商들이 산위의 神光을 보고 성인을 배알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도선과는 다른 신성한 존재를 지칭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김극기는 이를 자금상(紫金像)으로 일체화시킨 듯 하지만, 그가 월출산에 올라 바라본 方墳을 보고 ‘누가 알 것인가’라고 일컬었듯이 신성한 존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였다. 

사실 월출산은 신라 때에 月奈岳으로 小祀를 지냈던 곳이다. 신라의 소사 지역은 모두 산악으로서 해당 지역의 鎭山이었다. 신라의 제장이었던 명산대천은 사로국이 주변 소국을 병합하던 시기에 성읍국가 또는 부족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신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여 주변 소국을 병합하면서 신라의 국가 제례 속에 편입되어 조직화된 것이라 한다. 이 가운데 소사는 이전 성읍국가시대의 조상신이 거의 그대로 신라의 사전 속에 편입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상들이 월출산에서 보았다는 신광이나 배알하였다는 성인은 영암 지역의 조상신으로서 산신화된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김극기는 그것을 자금상이라고 보고 숭배의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이 자금상은 1985년 정영호박사가 발견한 석인상을 지칭한 것이 아닐까 추측되며, 마애불이 산견한 월출산 자락에 儒者의 관모를 갖춘 특이한 형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통견의 도포는 일본 「隅田八幡神社의 화상경」에 보이는 인물상 가운데 국왕과 문관으로 여겨지는 인물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 隅田八幡神社의 화상경은 동성왕 13년(491) 8월 10일 백제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아울러 상대포 전설이 도선의 입당설과 관련하여 생성되었다고 한다면, 도선의 입당설이 부정되는 상황에서 또다른 존재의 상대포 관련 전설이 도선의 전설에 부회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월출산의 神聖이나 石人像, 그리고 상대포 전설은 도선의 전설과 또다른 영암지역 전설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전승은 김극기가 方墳을 보았던 고려 중기에 이미 역사상에 잊혀진 존재였다고 여겨진다.

Ⅲ. 잊혀진 전설의 史的 복원 : 王仁의 渡倭와 荒田別

지적되듯이 현재 전하는 『조선환여승람』의 기사나 전설, 성기동의 명칭, 그리고 고고학적으로도 왕인집단과 대형옹관과의 연계성 등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극기의 시문에서 불명한 월악산(월출산) 神聖과 紫金像, 方墳 뿐만 아니라, 도선의 입당설에 부회된 상대포 전설은 고려 중기의 역사상에 잊혀진 전설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다시 『조선환여승람』의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고이왕 때에 성기동에서 태어났으며, 고이왕 52년 을사년에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고 하였다. 고이왕 52년은 『일본서기』 응신천황 16년조의 왕인 파견기사에 맞추어 서술된 것이다. 이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이래로 응신천황대를 고이왕대로 본 견해를 충실히 따른 것이지만, 한편으로 왕인을 보낸 주체를 다르게 서술한 『고사기』의 백제 조고왕(照古王)이나 『속일본기』의 귀수왕(貴須王) 또는 구소왕(久素王)을 이덕무가 『청장관전서』에서 고이왕으로 확정한 그것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왕인의 왜 파견 시기에 대하여 근초고왕 때부터 아신왕대에 걸친 시기, 근초고왕의 일본 통교 이후로 보기도 하지만, 『일본서기』의 수정기년 곧 당해 기년에 2주갑을 더한 아신왕 14년(405)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일본서기』 응신천황 15년조 왕인박사 왜 초치 기사에 등장한 荒田別이 같은 책 신공황후 49년조에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시기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G. ① [神功皇后] 49년 봄 3월 荒田別과 鹿我別을 장군으로 삼아 久氐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너가 卓淳國에 이르러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이 때 어떤 사람이 “군대가 적어서 신라를 깨뜨릴 수 없으니, 다시 沙白·蓋盧를 보내어 군사를 늘려 주도록 요청하십시오”라 하였다. 곧 木羅斤資와 沙沙奴跪에게[이 두 사람은 그 姓을 모르는데 다만 木羅斤資는 백제 장군이다] 精兵을 이끌고 沙白·蓋盧와 함께 가도록 명하였다.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의 7국을 평정하였다. ②㉠ 이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仍移兵西廻至) 古奚津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忱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屠南蠻忱彌多禮 以賜百濟) ㉡ 이에 백제왕 肖古와 왕자 貴須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이 때 比利·辟中·布彌支·半古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그래서 백제왕 父子와 荒田別·木羅斤資 등이 意流村[지금은 州流須祇라 한다]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千熊長彦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辟支山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다시 古沙山에 올라가 함께 반석 위에 앉아서 백제왕이 “만약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면 불에 탈까 두렵고 또 나무로 자리를 만들면 물에 떠내려갈까 걱정된다. 그러므로 반석에 앉아 맹세하는 것은 오래도록 썩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니, 지금 이후로는 천 년 만 년 영원토록 늘 서쪽 번국이라 칭하며 봄 가을로 조공하겠다”라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千熊長彦을 데리고 도읍에 이르러 후하게 예우를 더하고 久氐 등을 딸려서 보냈다.(『일본서기』日本書紀』 권 9, 神功皇后 49년 봄 3월)  

H. 永樂 9年(399) 己亥에 百殘이 맹서를 어기고 倭와 화통하였다. (이에) 왕이 평양으로 행차하여 내려갔다. 그때 신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뢰기를, “倭人이 그 國境에 가득차 城池를 부수고 奴客으로 하여금 倭의 民으로 삼으려 하니 이에 왕께 歸依하여 구원을 요청합니다”라고 하였다. 太王이 은혜롭고 자애로워 신라왕의 충성을 갸륵히 여겨, 신라 사신을 보내면서 (고구려측의) 계책을 (알려주어) 돌아가서 고하게 하였다. [영락] 10년(400년) 庚子에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군이) 男居城을 거쳐 新羅城(國都)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官軍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고구려군이)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任那加羅의 從拔城에 이르니 城이 곧 항복하였다. 安羅人戍兵 …… 新羅城 □城 …… 하였고, 왜구가 크게 무너졌다. ■■(77자 불명) 옛적에는 신라 寐錦이 몸소 고구려에 와서 보고를 하며 聽命을 한 일이 없었는데, 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代에 이르러 (이번의 원정으로 신라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니) 신라 매금이 …… 하여 (스스로 와서) 朝貢하였다. [영락] 14년(404) 甲辰에 倭가 法度를 지키지 않고 帶方 지역에 침입하였다. ……  石城 …… , 連船……  평양을 거쳐 …… 서로 맞부딪치게 되었다. 왕의 군대가 적의 길을 끊고 막아 좌우로 공격하니, 왜구가 궤멸하였다. (왜구를) 참살한 것이 무수히 많았다.(노태돈, 1992, 『廣開土王陵碑』, 』한국고대금석문자료집』 Ⅰ)

I. ① [應神天皇] 15년 가을 8월 壬戌 초하루 丁卯 百濟王이 阿直伎를 보내어 좋은 말 2필을 바쳤다. 곧 輕의 산비탈 부근에 있는 마굿간에서 길렀는데, 阿直伎로 하여금 사육을 맡게 하였다. 때문에 말 기르는 곳을 이름하여 廐坂이라고 한다. 阿直伎는 또 經典을 잘 읽었으므로 太子인 菟道稚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때 天皇은 阿直伎에게, “혹 너보다 뛰어난 박사가 또 있느냐”고 물으니, “王仁이라는 분이 있는데 훌륭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上毛野君의 조상인 荒田別과 巫別을 百濟에 보내어 王仁을 불렀다. 阿直伎는 阿直岐史의 始祖이다. ② 16년 봄 2월에 왕인이 왔다. 태자 토도치랑자는 왕인을 스승으로 삼았다. 여러 전적을 배우니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왕인은 서수(書首 ; 후미노오비토)의 시조이다.(『日本書紀』 권 10, 應神天皇 15년 가을 8월·16년 2월)

위의 기사 가운데 『일본서기』신공황후 49년조 기사(G)는, 大和政權이 신라를 정복하기 위해 출병하여 신라를 격파하고, 나아가 加耶 7국을 평정한 후 백제로부터 藩國이 될 것을 서약받았다는 내용으로, 일본의 소위 한반도 남부 경영론의 주요한 자료로 이용되어 왔다. 우리학계에서는 대체로 『日本書紀』의 편찬 과정에서 변개 조작되었다고 보고, 근초고왕대에 백제가 가야를 경영하고 전라도 지역의 마한 잔여 세력에 대한 정복 과정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