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를 널리 알리고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에 힘써왔던 (사)왕인박사현창협회가 2021년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왕인박사 출생설의 배경에 대해 학술적 연구 보고를 진행했다. 

지방자치 시대에 맞춰 자치단체마다 콘텐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위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은데 비해 논증이 부족한 것들이 대다수이다. 사실 근거가 부족한 단순한 가설만으로, 또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지금도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이러한 콘텐츠들로 인해 소요되는 자원과 시간 낭비는 미래동력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역사는 가설이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왕인박사에 대한 고증 연구와 조사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학자들의 연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설령 영암이 아닌 충남 공주, 부여로 확인이 될지라도 굳건히 연구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영암우리신문은 이러한 연구에 대해 지역민들이 함께 알아갈 수 있도록, (사)왕인박사현창협회와 함께 2021 왕인박사 학술대회를 통해 밝힌 영암 출생설의 배경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근대 이전 왕인박사 영암 출생설의 배경

- 차례 -
Ⅰ. 머리말
Ⅱ.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몇 가지 문제
  1.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연구사적 검토  
  2. 고려 명종 때의 문인 金克己의 시문 분석
  3. 王仁과 道詵의 탄생 설화
  4. 道詵 入唐說의 문제와 月嶽山 聖人
Ⅲ. 잊혀진 전설의 史的 복원 : 王仁의 渡倭와 荒田別 
Ⅳ. 맺음말

Ⅰ. 머리말

발표자는 2014년 4월 14일 (사) 왕인박사현창협회에서 주관하여 영암에서 「한국과 일본의 교과서와 역사서에 그려진 왕인박사」의 주제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한국의 역사서와 연구물에 그려진 왕인박사」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그 발표에서 왕인박사의 사적은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 『속일본기』 등의 사서에만 전하지만, 우리 사서로는 세종 25년(1443)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서 비롯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고사기』에는 백제 조고왕(照古王)이 논어(論語) 10권, 천자문(千字文) 1권 모두 11권을 화이길사(和迩吉師)에게 딸려 바쳤다 하고, 『일본서기』에는 응신천황 15년(284) 가을 8월 6일 백제왕이 보낸 아직기(阿直伎)가 태자에게 경전을 가르치면서 박사 왕인을 천거하자 황전별(荒田別) 등을 보내어 그를 불러 왔다고 하였다. 『속일본기』에는 백제 구소왕이 한고조(漢高帝)의 후손 왕구(王狗)의 손자 왕인(王仁)을 보내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서에서 왕인과 관련된 기록은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서 비롯한다. 곧 『해동제국기』는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 14년 계묘(283)에 비로소 의복(衣服)을 제작하고, 15년(284) 갑진에 백제에서 서적(書籍)을 받았으며, 16년(285)에 백제 왕태자가 오고, 20년(289) 기유에 중국인[漢人]이 처음으로 일본에 간 것으로 기술하였다. 또한 『선조실록』 선조 37년(1604) 2월 23일자에 일본 승려 현소(玄蘇)가 김광(金光)에게 보낸 글 가운데, ‘응신제(應神帝) 때에 이르러 백제국(百濟國)에 박사(博士)를 구하여 경사(經史)를 전수하니 귀천(貴賤)이 없이 중국 글을 익혔으며’라고 하여, 왕인 관련 기록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이후 남용익(1628~1692)의 『부상록(扶桑錄)』, 신유한(1681∼1752)의 『해유록(海遊錄)』, 조엄(1717∼1777)의 『해사일기(海槎日記)』,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이유원(1814∼1888)의 『임하필기』(1871), 김정희(1786∼1856)의 『완당집』, 한치윤(1765~1814)의 『해동역사』 등에서 왕인을 언급하고 있다. 이후 근대에 들어서서 수신사들의 견문록에 실린 일본인들의 왕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서 각종 잡지류의 논설과 신문 등에 실린 왕인에 대한 인식과 정치적 이용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발표자는 2014년의 발표에서 왕인이 일본에 건너간 시기 문제를 비롯하여 논어와 천자문의 유형, 왕인의 출자, 백제의 고대국가 발전과정상에 영산강 유역이 차지하는 위치,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 등에도 불구하고, 다음 네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곧 왕인이 일본에 건너간 시점에 대하여 문헌학적인 재검토 뿐만 아니라 최근에 발견된 평양 정백동 364호분에 논어 죽간 및 김해와 인천에서 발견된 신라 논어 목간과 상호 비교 연구를 통하여 왕인이 일본에 가져간 논어의  유형을 살필 필요가 있으며, 왕인의 출자와 관련하여 왕인 전승에 대한 자료 조사가 필요하며, 백제의 고대 국가 성장과정에서 영산강이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와 관련하여 영산강 유역의 고고학적인 성과와 문헌을 어떻게 연결하여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를 추구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 부정론과 긍정론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왕인박사 영암 출생설이 지니고 있는 문제와 한계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서로서 왕인의 일본 파견 시기를 칠지도 제작시기와 관련하여 살피고, 왕인을 초치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서기(日本書紀)』 황전별(荒田別) 기사를 분석, 검토함으로써 왕인(王仁) 도왜(渡倭)의 영암 관련성 여부를 살피고자 한다. 제현의 질정을 바란다.   
 

Ⅱ.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몇 가지 문제 

1.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의 연구사적 검토

왕인박사의 출자에 대하여는 백제 이주 중국인설과 백제인설, 영암출생설 등이 있다.
먼저 백제 이주 중국인설은 『속일본기』에 재일 왕인의 후예들이 숙이(宿禰)의 성(姓)을 내려줄 것을 청하는 상서에서 “한(漢) 고제(高帝)의 후손 란(鸞)이라 하는 사람의 후손 왕구(王狗)가 백제(百濟)에 옮겨와 이르렀는데, 백제(百濟) 구이신왕(久素王, 구소왕) 때에 성조(聖朝)에서 사신을 보내어 문인(文人)을 찾으니 구이신왕(久素王, 구소왕)이 곧 그(王狗, 왕구)의 손자인 왕인(王仁)을 바쳤습니다. 이가 곧 문·무생(文·武生) 등의 선조입니다”라고 한 데서 보인다. 이는 이덕유의 『청장관전서』와 『해동역사』에서 그대로 전재되었던 것인데, 1910년대에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아직기와 왕인을 한(漢)의 왕족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왕인의 본명은 화이(和邇)로서 백제인이 분명하며, 그 개칭도 실상 본명에 가까운 음(Wani)을 취하여 중국식 씨명으로 지은 데 불과한 것으로 풀이한다. 또한 왕인은 근초고왕의 일본 통교 이후에 왜국으로 건너간 백제사람이 분명하지만, 근초고왕의 대방지역 점거 전후 시기에 한고조의 후손인 왕구가 백제로 이주하였고, 왕인이 왜로 건너간 무렵 백제와 국교를 맺게 된 집단은 큐슈의 왜정권이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영암출생설은 1932년 아오키 게이쇼(靑木惠昇)의 「왕인박사 동상 건설취지문」에서 처음 제기되고, 이병연의 『조선환여승람』(1937)의 명환조에 왕인이 실리면서 등장하였다. 아오키 게이쇼는 취지문에서 ‘박사의 옛땅인 영암군 구림의 유적은 문헌에 전혀 나타나지 않고 구전될 뿐이니’라고 하여 구전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병연의 『조선환여승람』 영암군조에서 왕인이 영암에서 출생하였다는 서술은 구전에 바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오늘날 왕인의 영암 출생설은 1930년대 구림리 일대에 왕인 관련 구전이 있었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이러한 주장은, 김창수가 1973년 6월 『동아일보』에 『영암은 왕인박사의 탄생지』라는 글을 쓰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로써 같은해에 왕인박사현창협회가 창립되고, 1974년 동 협회와 전라남도가 공동으로 왕인박사 유적지 종합조사에 착수하고, 그 결과물로서 『왕인박사유적종합보고서』(1975)가 발간되었다. 당시 유적조사에 참여한 이은창과 유승국은 『동국여지승람』의 기사로써 이를 증거하고자 하였다. 

곧 이은창은 『동국여지승람』 영암군 고적 최씨원(崔氏園)조에 보이는 도선국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이미 왕인이 태어났기 때문에 「도선국사비문」에 도선국사의 모친 최씨가(崔氏家)가 성기산벽촌(聖起山僻村)에 있었다고 하였고, 『일본서기』에 보이는 동한(東韓)의 땅 이림(爾林)이 구림(鳩林)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왕인박사 영암출생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류승국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암군 산천 월출산조 김극기의 시에 보이는 상사(相師), 초해(超海), 알성(謁聖), 불복염고리(不復念故里), 강종도사수복지(降從睹史誰復知), 도상각(倒像閣), 방분(方墳) 등을 모두 왕인박사를 시사하는 추모의 구절로 보았다.

그 가운데 상사(相師)는 『해동역사(海東繹史)』(권 67, 왕인조)에서 왕인이 ‘능히 사람의 관상을 잘 본다(能察人相, 능찰인상)’는 구절을 지칭하며, 이옹무무홀방아(邇翁貿貿忽訪我)의 이옹(邇翁)은 『고사기』의 화이길사(和邇吉士)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이덕무(1741~1793)의 『청장관전서』에 실린 「청비록(淸脾錄)」과 「청령국지(蜻蛉國志)」에서 왕인이 관상을 잘보아 대초료황자(大鷦鷯皇子)가 왜황(倭皇)이 될 것을 미리 알았다는 전승을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러한 왕인박사 영암 출생설에 대해서는 이들 기록이 도선에 관한 서술로서 왕인 영암출생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므로 그 전거로 제시한 문헌적 증거를 반드시 재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