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식으로 출발…폐교위기 학교 살려

“어느 날 마을의 한 초등학생이 학교 앞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학교 앞에는 과속방지턱, 무인카메라, 보도 등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돌봄 기반조차 구축되어 있지 않아 ‘사회적 타살’이라 생각했습니다. 분명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질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일들이 또 발생할 수 있는 거잖아요”

강원도 춘천시의 별빛사회적협동조합에서 지역아동센터를 담당하고 있는 이승준 센터장이 설립 당시를 이야기하며 가슴 속 언저리의 북받침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강 상류의 춘천댐 주변에 위치한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골이다. 이곳은 한때는 춘천시에서 화천군으로 이동하는 길목으로 많은 차량이 오고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주변에 여러 개의 터널과 도로시설이 새로 개통되면서 이제 마을을 지나치는 차량은 많지 않았다.

이 마을에 위치하며 인근 3개 마을의 학생들만이 다니는 송화초등학교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라 학생수가 급감하며 전체 학생수가 10여명 남짓까지 줄었다. 그러던 차에 2005년 학교 앞 교통사고까지 겹쳤고, 마을 주민들의 위기의식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보기 위해 모였고, 방학 때마다 운영하는 공부방을 시작하며 마을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공부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주민들은 자격을 갖춰나갔고, 마침내 2009년 지역아동센터로 지정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줄었고 학년 합반 운영을 하던 송화초등학교는 폐교 위기에 처했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별빛지역아동센터’로 커졌고, 이제는 폐교 위기 극복이라는 새로운 과제로 닥쳐왔다. 그러다 한 일본 잡지를 통해 도시 학생이 시골로 와서 ‘유학’을 하는 내용을 알게 되었고, 이들의 획기적인 도전은 ‘산촌유학’으로 계속되었다.

‘별빛산골교육센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곳의 농산어촌유학 프로그램은 이내 유명세를 타며 해마다 유학생이 늘었고, 이곳이 마음에 든 도시 학부모들의 귀촌으로 연결되면서 어느덧 학생수가 40명을 넘어서고 학교는 다시 살아났다.

산촌 유학의 주요 프로그램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호스 테라피[Horse Therapy, 말(馬)을 이용한 정서 안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텃밭 체험, 목공예, 바느질, 통기타, 요리 등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며 자연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지키고자 한다. 공교육에 지친 아이들에게 마음껏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줘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별빛산촌유학, 마을형 유학의 ‘표본’ 

센터는 산골마을 한 가운데, 가장 큰 건물인 마을 커뮤니티센터 ‘솔다원나눔터’를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넓은 프로그램실과 식당,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도 갖추고 있다.

큰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별빛산촌유학센터’는 센터형이 아니다. 센터를 유학생들의 기숙사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농산어촌유학은 크게 자신의 집을 활용하는 농가형, 마을 내 건물을 활용하는 센터형, 주민들과 협력해 농가와 센터를 오가며 진행하는 마을형으로 구분한다. 

별빛산골유학센터는 마을형 유학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며, 학교가 끝나면 유학생들과 지역아동들이 모두 센터로 모여 방과 후 활동을 한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면 지역아동들은 각자의 집으로, 유학생들은 지정된 농가로 돌아가 숙박하고 있다.
농산어촌유학 관계자들은 “센터운영자와 교사, 농가 주민, 교육지원청, 학부모 등 운영주체 간 협력체계를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기숙형 센터로 운영되면 자칫 개인사업장화 되거나 마을과의 괴리가 발생해 마찰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센터 설립 전 지역주민과 학교, 교육청 등 관계자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력이 가능할 때 시도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교육문제로 출발해 노인문제까지 해소
살기 좋은 마을 꿈꾸는 사회적기업으로 

유학비는 보통 한 학생 당 월 60~80만원이다. 도시에서 자녀에게 들어가는 학원비, 생활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부담스럽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저소득가구 등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가정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전남의 도교육청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전남농산어촌유학프로그램’이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유학생들의 유학비는 센터 최소 운영비를 제외한 50만원을 숙박하는 농가로 보낸다. 유학생들의 아침 및 저녁식사와 취침공간을 제공하며, 마음을 나누어주고 있는 농가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별빛산촌유학센터가 선정한 농가에서는 손주를 키우듯이 2명의 아이를 돌보며 연간 1000만원 이상의 농업 외 소득이 발생한다. 노년의 시골 생활에서 큰돈이 아닐 수 없다. 또 생활교사와 급식담당자, 노인복지 전담 등 10여명의 직원 고용하며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특히 마을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유학생들은 지역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를 자연스레 해소시키고도 있다.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 나눔 활동, 노인 안부 살피기 등의 활동으로 마을 주민들과 수시로 교류하고 분기별로 마을소식지 ‘별빛N(엔)’을 제작하고 있다. 이 소식지에는 아이들이 직접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그려내고, 편지글을 주고받는 등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공부방에서 지역아동센터, 산촌유학센터로 확장하며 이를 매개체로 지역 교육 현안과 노인 복지 영역에서 다양하게 기여하고 있는 이곳은 2018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되며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고령화되는 마을, 노인 돌봄을 위한 ‘우리 마을 119’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어르신들의 가정의 형광등 교체와 각종 수리 등 어르신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한다. 또 사업의 연장선으로 노인 살림팀을 꾸려 점심 나눔, 방문 돌봄과 방문 의료까지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이자 사회적기업, 마을기업으로 거듭 성장하고 있는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은 산촌 유학을 중심으로 나이 들기 좋은 마을,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 청년들이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센터장은 “단순히 유학생들 통해 학생 수를 늘려 폐교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생각으로만 접근하면 도시 학부모들도 센터를 찾지 않을 것”이라며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지역과 도시의 아이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 모두가 상생하는 방향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