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항상 그래왔듯이, 휴대전화를 꺼내 날씨를 확인했다. 눈을 비비며, 하품하던 찰나, 한 기사를 봤다. 

‘전두환 씨 오늘 2시 광주지법 출석’ 몸에 알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법원으로 향했다. 유난히 경찰의 통제가 심했다. 2차례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았다. 워낙 통제가 심한 탓에 법원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주택가를 거쳐 돌아가니, 쉽게 법원 쪽문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주변에 있는 기자들의 말을 엿들으니, 전두환 씨는 13시 무렵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렇게 땡볕에서 30분을 기다렸을까, 전 씨를 태운 고급세단이 도착했다. 예전과 달리, 전 씨는 무척 야윈 모습이었다. 그러나 침묵하며 반성하지 않는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문득 2년 전이 떠올랐다. 2년 전 그 날, 전두환 씨는 33년 만에 광주에 내려왔다. 그는 법원의 지속적인 경고에 못 이겨, 부인 이순자 씨와 함께 법원에 출석했다. 
나도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아니, 그의 파렴치한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방청인으로서,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 법정을 한 번 둘러 보았다.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와 함께, 이런 말이 들려왔다. “절대 구실을 주면 안 되니깐, 절대로 흥분하지 맙시다” 의안을 끼고 있던 한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재판이 시작됐고, 전두환 씨가 등장했다. 그는 구순 노인이라 믿겨 지지 않을 정도의, 정정한 모습이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 같았다. 그는 명확하게 자신의 이름, 나이, 주소지를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할 일은 모두 마쳤다는 듯, 여유롭게 졸기 시작했다. 
그의 태도에 방청석이 술렁였다. 대부분 얼굴이 격양되어 있었다. 특히 바로 내 뒤에 계시던 어르신은 내 의자에 손을 기댄 채, 손을 벌벌 떨고 계셨다. 하지만 전두환 씨를 향해 소리를 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는 체념한 표정으로, 누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누구는 분을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 가운데 나는 뭔가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구실을 주고 말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가 ‘전직 대통령’ 에 대한 예우가 박탈된 일개 노인이라고 한들, 그가 ‘전직 대통령’ 이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렇게 전두환 씨 측 변호인(정주교 변호사)과 검찰 측의 모두 진술이 이어지며, 재판은 마무리됐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전두환 씨의 반성 없는 태도에 격분하고 있었다. 30분이 지났을까, 그가 법원 밖으로 나왔다. 차량에 탑승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침묵했다. 사람들을 피해 차량에 탑승하는 데만 급급했다. 절규가 들려왔다. 아니 한과 고통이 응축되어, 형용할 수 없는 절규가 들려왔다. 동시에 한 중년 남성은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얼굴에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전두환 씨는 그렇게 광주를 떠났다. 하지만 난 믿었다. 언젠가는 그도 부끄러움 아니 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그러나 그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그는 지속해서 책임을 부인했다. 더불어 자신의 행적을 기리고자, 오찬을 열기도 했다. 반성, 부끄러움, 미안함의 태도는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는 용서받을 수 있는 일말의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반성이란 무슨 뜻일까?’ 기출문제를 풀 때마다 항상 나오는 말인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마음으로 이해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참된 뜻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다. 반성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성질이라는 걸. 그러기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반성하지 않는 자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
-'아들의 이름으로' 오채근(안성기)-
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