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공공도서관,  미래에서 변화를 찾다
책을 빌리거나 읽고 공부하는 공간으로만 인식되었던 ‘도서관’. 하지만 21세기 시대 트렌드는 도서관마저 변화하게 만들었다. 강연과 공연, 이벤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카페 및 여가활동을 포함한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서관의 변화는 현재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트렌드에는 뒤처지는 책을 빌리거나 읽기만 하는 영암의 도서관 변화가 더디다. 시설의 한계와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영암공공도서관의 이전과 관련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지금이 바로 지역 도서관의 변화를 꾀해야 하는 시점이기에 전국의 도서관 현장을 취재해 보도한다.

< 글 싣는 순서 >
- 기적을 계속 낳고 있는 순천 ‘기적의 도서관’
- 전주시민들의 책 놀이터로 변신한 ‘평화도서관’
- 시끌벅적 떠들 수 있는 도심 속 복합문화공간 ‘양재도서관’
- 솔솔 책 향기와 더불어 가는 문화공간 ‘책마루 도서관’
- 독서와 휴식이 어우러진 ‘파주 지혜의 숲’
- 역사((驛舍) 공간을 지역민들의 품으로 ‘가재울도서관’
- 공장지대 폐교에서 지역의 명소로 ‘김해 지혜의 바다’
- 폐교를 인기 절정의 ‘요즘 도서관’으로…‘고창 책마을해리’

잡초가 무성했던 폐교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며 전국 각지의 방문객들로 줄을 잇고 있다.

전북 고창군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자리한 ‘책마을해리’는 책과 출판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바닷가 인근이라는 장점에 폐교를 활용했다기에 한번쯤 보러오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물론 급속히 자리 잡은 캠핑문화 등 생활문화의 변화도 있겠지만, 이곳이 이렇게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이라는 모토로 ‘읽고, 하고, 쓰고, 펴내며 책으로 열린 또 다른 세계’를 펼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책마을해리’는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즘 도서관’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곳이다.

출판 전문가가 폐교 인수해 ‘책 세상’ 조성

‘책마을해리’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곳은 ‘도축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

2001년 폐교되었던 해리초등학교 나성분교의 매각이 진행되자 축산업자들의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 이때 한 중년 부부가 고향을 지키기 위해 귀촌을 결심했다. 바로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에 나성초등학교를 세워 기부했던 설립자의 증손자다. 선친의 교육의지를 이어가기 위해서 폐교가 되자 학교를 되사들인 것이다. 

서울의 대형 출판사에서 오랜 시간 기획·편집자로 일했던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대표)은 출판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6년 인수했던 폐교를 ‘작은 책 세상’으로 조성해 나갔다.

한동안 비어있던 학교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가며 준비해 책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가족이 모두 내려와 정착하고, 운동장과 교실 구석구석을 손보고 단장했다.

과거의 학교 외관을 그대로 둔 채 교실을 터서 도서관을 만들고, 공방을 꾸몄다. 폐교되기 전 선생님들의 관사로 쓰였던 공간은 여행객들의 숙박 공간으로 리모델링했고 카페 시설도 갖췄다.

마침내 문을 연 ‘책마을해리’는 2010년 여름 독서캠프, 도서관만들기캠프, 폐교체험을 시작으로 출판캠프, 한지 공방, 활자 공방 등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도서관은 기본, 다양한 테마…꿈꾸는 공간
TV프로그램·인기배우 영향…포토존 생겨

‘책마을해리’는 동학평화도서관, 책숲시간의숲, 바람언덕, 버들눈도서관, 책감옥 등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이곳에 들르면 우선 북카페 ‘책방해리’를 거치게 된다. 책마을해리에서 출간한 책을 구경하고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책마을해리의 입장료는 이곳에서 구입한 책 한 권으로 대신하고 있다.

‘책마을해리’는 책을 들고 갈 곳이 많다. 북카페를 통해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톰소여의 모험’에서나 볼법했던 ‘트리하우스’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자리 잡은 오두막집인 트리하우스에는 ‘동학평화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나무 위 아담한 집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릴 적 로망을 실현시키는 곳이다.

교실 공간을 터서 만든 ‘책숲시간의숲’은 캠프, 강연, 심포지엄, 포럼 같은 행사를 열고 있다. 천장을 뜯어내면서 드러난 트러스를 그대로 두어 공간감을 살리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3만 권이 넘는 책을 꽂았다. ‘1박 2일’ 등 TV 프로그램들이 촬영된 곳으로 인기배우인 공유의 화보 촬영지로도 유명해 ‘책마을해리의 공식 포토존’이다.

‘버들눈도서관’은 그림책과 어린이·청소년 책 전문 도서관이다. 교실과 복도를 트고 모든 벽면에 빈틈없이 책을 채웠다. ‘책감옥’도 흥미롭다. 일단 들어가게 되면 책 한권을 다 읽어야 나올 수 있다. 문은 밖에서 걸어 잠그게 돼 있고, 식사를 넣어주는 배식 구멍이 있다. 

만화책이 한가득한 ‘만화 공방’,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 사이에 아담하게 만들어진 객석을 두고 소규모 공연과 영화제가 열리는 ‘바람언덕’ 등 ‘책마을해리’에는 다양한 테마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책과 출판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책마을해리’는 재탄생했다.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글을 쓰고 책으로 펴낼 수 있다. 읽고 경험한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펴내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실제 동네아주니, 할아버지부터 학생, 교사까지 시인학교, 만화학교, 출판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100여권의 책을 선보였다. 작가와의 대화, 영화 상영 등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도 치러내며 축제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시설과 프로그램이 가득한 ‘책마을해리’는 앞으로 책 중심의 대안학교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폐교에 책이라는 숨을 불어넣어 재탄생한 ‘책마을해리’. 이곳이야 말로 자연과 함께 휴식을 즐기는 놀이터,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멋진 도서관이다. 방문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가며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요즘 도서관’을 잘 반영한 ‘책마을해리’. 전국에서 찾아올 만큼 인기 있었던 이유가 여실히 나타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