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칼럼]왕과 신하, 왜 날카로운 긴장관계를 유지했나

율곡이 예언했던 난리, 18년 후 임진왜란으로 현실화
율곡 이이에 대하여 - ⑤
[2020년 9월 11일 / 제285호]
영암우리신문l승인2020.09.11l수정2020.09.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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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갑수

1574년(선조 7) 정월,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는 이변이 생겼다. 자연 이상이 생겼을 때의 관례에 따라 선조는 ‘치세의 도’를 구하는 전교를 내린다. 

당시 39세였던 이이는 현실의 폐단을 지적하고 개혁의 방법을 제시하는 <만언봉사>를 올렸는데, 여기에 나타난 이이의 현실에 대한 진단은 대단히 날카로울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도 무서울 정도로 정확했다.

“오늘날 상황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은택이 이미 다하고 권력을 가진 간신이 남겨 놓은 해독이 바야흐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올바른 의론이 시행된다고 해도 백성의 힘은 이미 바닥이 나버렸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한창 젊었을 때 술에 빠지고 여색을 탐하여 해독이 될 단서가 많았지만 젊은 혈기로 몸이 상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만년에 이르러 해독이 갑자기 나타날 때 아무리 근신하고 몸을 보양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노쇠하여 지탱할 수 없게 된 것과 같다. 오늘날의 상황이 참으로 이와 같다. 10년을 못 가서 반드시 난리가 일어날 것 같다.”

이이가 <만언봉사>를 올리고 나서 18년 후, 그가 예언했던 ‘난리’는 임진왜란으로 현실화되었다. 

이이는 경연에서 선조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때로는 구슬리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하기도 하면서 선조에게 군주로서의 자존심을 격발케 하고 이상 정치를 이루겠다는 포부를 가지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동서 붕당 어느 한쪽에도 지지세를 갖지 못한 선조는 말과 생각뿐 이이의 고매한 간언을 수행할 여력이 없었다. 

선조는 경연에서,
“나라의 일은 참으로 하기가 어렵다. 한 가지 폐단을 고치려 하면 또 한 가지 폐단이 불거져서 없애지를 못하고 도리어 해로움만 더하게 되니 수족을 놀릴 수가 없다고 하겠다.”
우리가 알듯이 조선은 대부분 왕권보다는 신권이 강한 정치체제였다. 

이이는 동서 붕당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인 서인을 두둔하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그는 동인들에게 서인의 영수로 지목되었다. 선조는 이이를 신임했지만 이이의 정책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건국한 지 200년, 조선은 명운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선조는 의영고에 비축한 황랍 500근을 궁중에 들이라고 전교했다. 불상을 만들거나 새로 불사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이는 사간원 간원으로서 국가 물자를 남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간언했다. 

선조는 군왕의 사사로운 행위를 신하가 일일이 간섭한다며 불쾌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이는 간언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선조는 황랍을 의영고에 반납했다. 황랍은 귀인 김씨가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불사를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다.

간언의 목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이이는 왕이 선비들을 무시하려 했다고 판단하여 실망한 나머지 언제라도 사직할 마음을 품게 되었다. 참고로 이런 사안을 왕과 신하의 감정이나 욕망 대립으로 보는 것은 비역사적인 태도이다. 

여기에는 왕권과 신권의 상호 견제와 대립 그리고 신하로서 왕권을 제약해야 한다는 유학 지식인의 이념적 소신이 작동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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