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행복할 수 있죠”

김성실 영애원 사무국장
[2020년 7월 10일 / 제277호]
신은영 기자l승인2020.07.09l수정2020.07.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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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암에살다
지난해 영암군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여성의 성장과 안전, 행복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뜻의 여성친화도시. 영암 속에서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그녀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52년 인생 중 무려 30년을 영애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 온 김성실 사무국장을 만났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짧은 머리에서 풍기는 강한 인상 뒤로 천진한 웃음을 품고 있는 김 사무국장은 이름을 따라 살아오기라도 한 듯 ‘성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영암 회문리에서 태어난 김 사무국장은 영암여중과 영암여고를 졸업한 진성 토박이로 고등학교 졸업 후 영암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광주소재의 야간대학을 통학 할 만큼 악바리로 통한다.

의류학을 전공하다 영애원 3대 원장이었던 아버지의 SOS를 받고 영애원에 들어와 사회복지학 공부를 마칠 때까지 무려 8년을 광주로 통학하며 공부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하게 의류학원을 알게 됐는데 아주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봐야겠다는 일념하나로 통학까지 하면서 배우게 된거죠. 헌데 갑작스레 영애원의 원장직을 맡게 된 아버지가 버거워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래. 시집가기 전까지만 아버지 도와드리다 가자’라는 생각이었어요. 정신 차리고 보니 30년이 흘렀네요.”

교역전도사로 영애원에 평생을 바쳐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까. 어려서부터 영애원이 아버지의 직장이 아닌 친구의 집이었다는 김 사무국장은 어린 시절 영애원 친구들의 대변인 노릇도 톡톡히 해냈다.

“학창시절에도 영애원에서 생활하는 친구들과 선후배가 많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들이죠. 예전에는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선입견과 차별, 괴롭힘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그 당시에 저도 모르게 그런 일들과 많이 맞섰나봐요.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나중에 친구나 선후배들이 ‘그때 이렇게 해줘서 고마웠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정말 내 친구들이어서 그랬던 것이겠죠.”

그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참던 김 사무국장은 영애원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안타까운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경제적인 형편이나 부모님의 건강상 이유로 오는 아이들도 가슴이 아프지만 학대나 방임으로 인해 우리에게 오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죠.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상황이 개선돼지 않았는데도 다시 데려가겠다는 부모님도 많지만 우리는 반대하죠. 하지만 아이들은 열이면 열 다 부모님을 따라가고 싶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보내지만 거의 모두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요. 한편으론 그 부모님들이 이해도 되지만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죠”

김 사무국장은 52세의 나이에 벌써 두 번이나 혼주석에 앉았다. 영애원이 친정인 아이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두 아이다 친척이 있다 보니 그 분들께서 자리에 앉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헌데 아이들이 끊임없이 절 설득하더라구요. 고민이 많았죠. 내가 진짜 이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역할을 했을까. 결론은 이 친구들이 이미 내려준 것이죠. 특히나 한 친구는 시어머님 되실 분께서 예비신랑과 함께 영애원을 직접 찾아 오셨어요. ‘이렇게 심성바르고 예쁜 내 며느리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너무 궁금해서 왔는데 참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는데 지금까지 영애원을 위해 달려온 내 인생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어요. 내 노력들이 이 아이들의 인생을 빛내주는 역할을 했구나하는 생각에 많이 감격하고 감동받았죠.”

영애원 아이들에게 매달리느라 밤 10시가 되기 전 퇴근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김성실 사무국장은 딸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했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픈 마음에 공모사업신청 같은 행정업무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매일이 야근이었죠. 그래도 집에 가면 딸이 항상 밝게 맞아줬기 때문에 ‘날 잘 이해해주는구나’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성인이 되고나서야 많은 얘기를 털어놓더라고요. ‘나도 엄마가 필요해’라는 사인을 내가 못 본거죠. 지금도 너무 많이 미안해요. 가장 사랑하는 내 딸인데, 가장 사랑을 받을 나이에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해요.”

김성실 사무국장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은퇴 후 계획도 미리 세워놨다. 사회복지직에 있는 남편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인생 후반기를 보내겠다는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남편은 ‘밥차’를 해보자는데 내가 요리 실력이 워낙 없어서. 대신 지금까지 해 온 행정업무를 바탕으로 무료민원상담소를 하고 싶어요. 지역의 어르신들이 대부분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시기 때문에 서류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중요한 것도 포기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민원처리나 복지서비스를 위한 업무 등을 봐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모래상자심리치료’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을 위한 심리상담센터도 계획하고 있구요.”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때까지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김성실 사무국장의 뜻이 영암의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신은영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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