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가평론가 김갑수

고려 공민왕 16년, 1367년에 태어난 이방원이 과거 문과에 급제한 것은 우왕 9년, 1383년이었다. 이방원의 나이 16세 때였으니 말 그대로 ‘소년 급제’를 이룬 것이다.

그는 학식과 문장에서 일반 문사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가 당대 최고 일류 학자를 채용하는 예문관의 제학이 된 것은 그의 문사적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졸저 《진짜조선역사》(2017년 간)에서 조선의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을 중국에서 최고의 황제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당 태종 이세민에 비교하여 논의한 바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이방원의 교양과 정치력을 이세민과 견줄 때 전혀 손색이 없음을 논증하려 했다.

여말선초 때만 해도 문관과 무관의 구별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똑똑한’ 무관들이 많았다. 최영이나 이성계 같은 이가 당대 대표적인 무관으로서 국정의 최고 직을 담당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문관과 무관의 자질을 함께 갖춘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이방원은 당대 정몽주, 정도전과 함께 문무관의 자질을 겸비한 보기 드문 영재였다. 

당대 식자들의 잔치에서는 돌아가며 즉흥시를 지어 읊조리는 순서가 있었는데, 이성계는 최고위 인사들과의 연회에 늘 이방원을 참석시켜 그들 앞에서 시를 짓도록 했다. 이방원에게는 분명히 비범한 면모가 있었다. 아마도 이방원의 정확한 판단력과 기민한 순발력은 문무관의 소양을 함께 축적한 저력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한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인해 국내에 있던 이성계 가족은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이방원은 신속하고도 완벽한 조치를 취해 가족을 보호한다. 이성계의 두 부인은 각각 포천 재벽동 농장과 철현 농장에 가 있었다. 개경에서 전리정랑 직에 있던 이방원은 회군 소식을 듣자 집으로 퇴근하지 않고 사병과 노비 100여 명을 소집하여 곧장 포천으로 달려가 두 부인을 모시고 동북면을 향했다.

이방원은 밤을 새워 행로하면서 인가에 들어가지 않고 풀밭에서 야영했다. 그는 사병과 부하들에게 각기 부서를 편성하여 임무를 맡겨 만약의 상황에 대비토록 했다.

그는 말하기를, “최영은 일을 모르는 사람이니 반드시 나를 추격하는 일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하며 7일 동안 야영하며 머무르다가 사변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경했다.

1392년(공양왕 4년) 이성계가 황해도에서 사냥하다가 낙마하여 중상을 입었다. 당시 수상이던 정몽주는 이 기회를 타서 이성계 일파 제거 공작에 들어갔다. 그는 정도전, 조준, 남은 등 이성계 측 혁명파 인물들을 귀양 보냈다. 

한편 이성계는 귀경하지 않고 예성강의 벽란도에서 요양하고 있었는데 이방원이 급거 말을 몰고 달려가 강요하다시피 이성계를 가마에 태워 귀경시켰다. 이성계가 멀쩡한 몸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이 나자 정몽주 세력은 더 이상 함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의중도 떠볼 겸 타협책도 제시할 겸해서 이성계의 처소를 방문했다. 덕장 이성계는 정몽주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몽주를 대해 주었다. 이때 정몽주가 어떤 생각을 하며 돌아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귀가하지 못한 채 죽었다.  

강경파인 이화, 이제와 함께 이성계에게 정몽주 제거를 건의한 이방원은 이성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잠시 생각 끝에 단독 거사를 마음먹었다. 그는 여진 출신 장군 이지란에게 정몽주를 제거하라고 했지만 이성계를 따르던 이지란은 이를 거부했다. 이방원은 지체 없이 자기 부하 조영무를 시켜 정몽주를 살해해 버렸다. 

1392년의 일이었다. 바로 이 해에 이성계는 혁명에 성공하여 조선 창업을 선포했다. 이방원의 판단은 정몽주를 제거하지 않고는 혁명에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방원은 피를 묻히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혁명의 속성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