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정의하자면 모둠김밥이에요”

서예가 한민자 씨
[2020년 5월 8일 / 제268호]
노경선 기자l승인2020.05.11l수정2020.05.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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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암에살다
지난해 영암군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여성의 성장과 안전, 행복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뜻의 여성친화도시. 영암 속에서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그녀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본인의 삶을 ‘고급스럽진 않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모둠김밥이라고 소개하는 ‘국제서법 한국본부 호남지회’ 한민자 서예가를 만났다.

한민자 선생은 현재 구림초, 영암초, 영암종합사회복지관, 군립도서관, 미암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서예와 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영암여중, 여고를 졸업 한 그녀는 대학 진학 실패 후 영암 록촌서예원에 들어가 서예를 익히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제가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교사가 아닌 선생님.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의 권유로 서예에 입문하게 됐죠. 몇 년 지났나. 어느 날 원장님이 ‘여자는 천자문만 알면 돼’라고 하시는 거예요. 머리가 띵 했죠”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한국 최고의 선생님을 찾아오라’며 그녀를 상경시켰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열린 ‘88인 서예대전’, 그 곳에서 근현대 서예사의 4대가 ‘여초 김응현’선생을 만났다.

“여초 선생님 밑에서 7년 정도 공부를 했어요. 이론만 3년 넘게 걸렸죠. 지금도 서예계에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스승님의 이름 덕을 볼 정도로 대단한 분이었죠. 그런 분 밑에 있으니 눈은 높아지는데 실력은 안 늘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인다. 

60의 나이에도 때 묻지 소녀 같은 모습을 간직한 한민자 선생은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은 아픔이 있다.

“부모님이 집 앞에 일을 보러 가시며 잠깐 켜놓은 호롱불이 책상위에 쌓아둔 신문더미에 옮아 붙으면서 큰 불이 났었죠. 배냇저고리에 싸여있던 저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죠. 당시 광주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도 포기하라고 했답니다. 사망선고만 안 내렸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부모님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 알려주신 민간요법을 써봤는데 그것이 화기를 내렸는지 차도를 보였대요. 돌도 안돼서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거죠”

8남매 중 6째인 한민자 선생은 부모님에게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었다.

매일 입을 옷에 이부자리, 식사 등 한 선생의 곁에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길이 그득했다.

“저는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어디서나 부모님의 손길이 옆에 있다 보니 항상 어린아이였던 것이죠.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내적형성이 삐뚤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스스로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그녀이지만 실상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큰 오빠의 아이를 시작 해 지금까지 4명의 조카를 키워낼 만큼 책임감 강하고 정이 많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사촌들이 함께 사는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 큰 오빠의 첫 아이까지 부모님께 맡겨졌어요. 아버지는 공직생활을 하시느라 바깥에 계시는 일이 잦았고, 어머니는 농사에 바빠 자연스레 제 몫이 됐죠”

그 후, 큰 오빠의 조카에 이어 둘째오빠의 조카, 남동생의 두 아이까지 모두 거둬 키웠다.

“어머님이 연세가 들다보니 조카들을 다 돌보기 힘들어 하셨어요. 인천에서 서예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었을 때인데 제가 내려오기를 너무 간절하게 바라셨어요. 어쩔 수 없이 다 접고 내려왔죠. 그렇게 4명의 조카를 거둬 키웠어요. 힘들었지만 지금은 너무 좋아요. 호칭만 고모지 서로 엄마와 자식으로 지내고 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서예에 매진하지 못 한 것이 너무 아쉽다는 그녀는 이제 심리상담사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서예에 몰두 하지 못 한 것이 한이죠. 그렇다보니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자격증도 여럿 있죠. 지금은 불교상담심리사 상급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도 그랬지만 현대사회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죠. 그 분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은데 돌팔이가 상담을 할 수는 없잖아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서 무료상담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불교 경전을 옮겨 적는 ‘사경’을 쓸 계획이라는 한민자 선생은 10년 후 작은 전시회를 열어 그동안 가르쳐 온 제자들과 친구들을 초대해 한자리에서 만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노경선 기자  demat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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