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암에살다
지난해 영암군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여성의 성장과 안전, 행복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뜻의 여성친화도시. 영암 속에서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그녀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군서면 해창리에서 한국의 분청자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월출산도예공방’의 정수미 작가를 만났다.

함평이 고향인 정수미 작가는 군서의 한 폐교에 터를 잡고 2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정수미 작가는 22년 전 도예를 만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한다. 하루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시작한 직장생활은 정작가에게 지루함 뿐이었다.

“늘 나에게 맞는 일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에 있었어요. 남들은 큰 회사에 들어갔다고 부러워했지만 하루하루가 지루할 뿐 아무런 재미가 없더라고요. 문학강좌, 예술강좌, 인테리어 등 많은 것을 배워봤지만 딱히 성에 차지가 않았어요”

직장이 있는 목포와 함평 본가를 오가는 길에 보았던 ‘무안요’라는 도예공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몇 번 생각을 하다 ‘오늘은 꼭 가봐야지’하는 생각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떤 분이 물레를 차시는 거예요. 물레 위의 광경이 마치 마법 같았어요. 그때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해요”

도예라는 생소한 분야에 첫 눈에 반한 정 작가는 그 날 그 자리에서 수하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렵게 생각하고 수하생이 될 수 있겠는지 여쭤봤더니 스승인 김옥수 선생님께서 아주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그 길로 바로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무안요에 들어가 1년 반을 생활했어요. 비록 하는 것은 잡일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것이 다 배움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빨리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느긋하기만 한 스승의 모습에 28세에 대불대 도예과에 편입했다.

부모님께는 회사를 그만뒀다는 것도, 도예를 배운다는 것도 비밀로 했던 터라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모은 돈을 모두 학비에 투자했다.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 모두 학비로 쓰느라 정말 힘들었죠. 가족들에게 비밀로 했던 터라 도움 받을 곳도 없고 해서 나중에는 결국 고백했어요. 근데 또 부모님은 별 다른 얘기 없이 이해해주시더라고요. 6남매에 다섯째다보니 너라도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라는 뜻이셨겠죠”

한 때는 체험학습과 출장강의도 했었지만 본인의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지금은 모두 중단했다.

마음 편히 작품 활동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신청과 유지가 까다로운 지자체의 문화예술지원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돈이 되는 출장수업과 체험학습 위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문득 ‘내 작품은 언제 만들지? 돈 벌려고 도예를 시작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들어오는 강의요청을 모두 사양하고 나니 그때부터 진짜 작품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정수미 작가는 5번의 개인전을 비롯해 30여회에 가까운 단체전과 기획전에 참여해 ‘전통과 실용성이 접목된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이상적인 작품’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정말 행복한 직업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나만의 생각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삶이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물레를 돌리지 못할 때까지 굴곡 없이 잔잔하게 작품만을 생각하며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