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영암에살다
지난해 영암군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됐다. ‘여성의 성장과 안전, 행복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뜻의 여성친화도시. 영암 속에서 치열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던 그녀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시인은 하늘이 준 이름 같아요. 살다보면 자연스레 쓰게 되는 것이 시인 것이지 노력과 공부로 메울 수 있는 이름은 아니지요”

지난 24일부터 전남도교육청 ‘이음갤러리’에서 ‘가슴에 머무는 향기’라는 주제로 6번째 개인시화전을 열고 있는 박춘임 시인의 첫 마디다. 매일의 일상을 정겨운 글로 풀고 있다는 그녀는 천성이 타고 난 글쟁이라고 소개한다.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박춘임 시인에게 “어떻게 글을 이렇게 예쁘게 쓸 수 있나요”하고 물었더니 본인이 글 쓸거리가 많은 삶을 살아왔다며 얘기를 꺼내 놨다.

그녀는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중학교 2학년 진학을 이틀 앞두고 동네친구와 함께 구로공단 세탁공장에 취직했고, 1년 간 번 돈으로 한 살 어린동생들과 중학교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후, 경남마산의 한일합섬공장에서 근무하며 부설인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현 마산한일여자고등학교)에서 야학에 매진했다.

“정말 어렵게 학업을 마쳤죠. 하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만 했어요.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 온 그녀는 영암 내 전 우체국에 손 편지를 보냈어요.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 한 여고생이 ‘나 이런 사람이니 이런 일 잘 할 수 있다. 날 뽑아 달라’는 내용의 일종의 이력서를 보냈으니 편지를 받은 분들이 참 당차다 싶으셨을 거예요”라고 웃었다.

말 한마디마다 자기애와 독립성이 강하게 묻어 나오는 박춘임 시인은 본인의 글을 읽다보면 자신의 삶이 안타깝고 아프게 느껴진다고 한다.

“내가 나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인데 참 짠해요. 작품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첨가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내 가슴에서 묻어 난 진솔한 이야기다 보니 아픈 마음이 들기도 해요. 인생을 겪어보니 무난한 삶을 원해도 무난하게 살아지지 않더라구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린 시절이 너무 가슴 아파요. 초등학교 시절 가정통신문에 장래희망으로 가수라고 적고 아버지한테 드렸더니 ‘네까짓 것이 가수를 해야?’라셨어요, 중학교 시절에는 여군 장교가 되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똑같은 답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꿈이 없었어요. 아니 꿈을 안 갖은 거죠”라며 어렵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오로지 돈을 벌어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꿈을 포기하고 살았지만 하고 싶은 것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2002년, 허름한 녹음실을 빌려 혼자서 가요음반을 만들었고, 4년 전에는 글을 쓸 때의 감정을 그대로 담아 낸 ‘무지개로 뜨는 시 낭송집’도 발매했다.

또, 42세의 나이에 만학도의 길을 선택, 영양사와 조리사면허를 취득해 현재는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조리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춘임 시인은 스피칭강사로 인생 2막을 펼치기 위해 논술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다가온 정년을 바라보며 사실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년을 채웠다고 내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지요.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나이가 들어 활동하기 어려운 나이가 됐을 때 내 자신 스스로 ‘나는 참 열심히 잘 살았구나’라는 자평을 내리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번 인생이 아닌 단어 그대로 ‘잘 살아온 삶’을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는 고풍스럽게만 느껴질 시인이란 타이틀을 짊어진 박춘임 시인의 ‘치열했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살아온 삶’으로 투영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