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 시사평론가 김갑수

한국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나로서는 뜻밖의 일이다. 더구나 4개 부문이나 수상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지나놓고 보니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벽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 개인적인 성찰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놓고 설왕설래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것은 경탄과 축하에서 폄하와 거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수상 이유를 분석하는 글들 역시 천차만별로 횡행하고 있다. 각기 나름의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선뜻 동의 되지 않거나 조금도 동의할 수 없는 글도 적지 않게 나돌아 다닌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한국 영화에서 하나의 ‘역사’를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축하를 망설여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역사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고 옹졸한 요인으로 결과 되지 않는다. 때문에 경탄과 축하가 감독 1인에게만 쏠리는 현상에도 문제가 있다. 또한 지나친 정치 음모론적 시각도 가당치 않다. 여기에는 수많은 복합적 요인이 개재해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배경에는 한국 영화 시장의 기록적인 성장세가 자리 한다. 2017년 한국 영화시장 규모는 2조 3천271억 원으로, 세계 6위를 기록했으며 2018년에는 5위로 올라섰다.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매년 5편에 이른다.

한국의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는 4.25회로, 세계 평균(1.9회)을 훨씬 넘는 수치일 뿐만 아니라 영화 강국인 미국(3.5회)과 프랑스(3.1회)보다도 높다. 한국 영화의 이런 특이한 현상을 할리우드의 영화계가 놓쳤을 리가 없다.

다음으로 한국 재벌기업 CJ의 영화 투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CJ 이미경 부회장은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서 영화 제작 전반을 지휘했다. 그는 <기생충> 제작 및 공급 계약을 125억 원에 체결하면서 대부분의 비용을 감당했다.

그는 2017년 아카데미상 후보작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경영진 파트에 회원으로 위촉되었다. 이미경 부회장은 광범위한 인맥을 바탕으로 <기생충>의 미국 세일즈에 힘을 쏟았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계 사람들은 막강한 재력과 화려한 파티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출연진의 공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는 분명히 비범한 데가 있었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행운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영화제를 ‘로컬’ 영화제라고 재치 있게 표현했지만, 그것은 아카데미 영화제가 세계 최대 영화제라는 점을 전제로 한 '조크'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왠지 구질하고 현학적이며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유럽 영화보다는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가장 중시하는 배우들의 인상과 연기력에서도 할리우드 영화가 유럽 영화보다 현저히 앞선다.

역시 내 개인 의견이지만 아카데미상 수상작은 작품성과 상업성이 1 : 3 정도로 고려되어 결정되는 것 같다. 1991년 수상작인 <양들의 침묵>은 뚜렷이 작품성이 고려된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이 주어졌지만 상업적으로는 대성하지 못했다. 한편 <기생충>에는 보다 많은 관행대로 작품성보다 상업성이 더 고려된 듯하다.

끝으로 <기생충>의 아카데미 대거 수상은 영어 패권, 다시 말해 미국의 유일 패권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조짐 사례가 아닐까 한다. 할리우드 영화계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 다른 미국인보다 민감한 사람이 더 많은 집단이다.

사족을 보태자면 영화에 나오는 ‘짜파구리’를 자막에서는 ‘람동(라면 + 우동)’으로 처리했는데 나는 여기에 사소한 유감을 표명한다. 그냥 ‘짜파구리’라고 그대로 옮겨서 영어권 사람들에게 ‘짜파구리가 뭔데?’ 하고 궁금하게 만들어 자기들끼리 알아보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개인 생각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