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노역 피해자 故이상업 선생의 아들 영암읍 이선희씨
일본이 빼앗아간 아버지 명예 회복 위해 2차 집단소송 참여

1943년 열여섯의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현 미쓰비시광업으로 강제동원돼 2년을 꼬박 일하고도 무일푼으로 돌아온 故이상업 선생.

그는 16살 때 ‘영장’을 받고 끌려갔다. 일제 징용령엔 만 17살 이상의 남자를 동원하도록 돼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이 선생의 아버지는 “뼈도 굵지 않은 어린 자식을 어떻게 징용에 내 보내느냐”고 항의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탄광 생활은 그에게 ‘지옥’이었다.

‘황국신민의 영예로운 산업전사’라는 허울 좋은 말과는 달리 지하 1500m 막장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하루 15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소년에게 삶은 지옥이었고 죽음은 ‘축복’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 선생은 “차라리 죽는 것이 부러울 정도였다. 그러면 고통에서 해방되니까…”라고 수기를 통해 회고했다. 동료들의 무참한 죽음을 연이어 목격한 열다섯 살 소년은 결국 탈출을 결심했다. 그러나 두 차례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고, 그때마다 초주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절망의 공간에서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세 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탈출에 성공해, 1945년 광복과 함께 구사일생으로 고향 영암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故 이상업 선생이 살아생전 남긴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은 뇌경색으로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던 2016년 11월 故이상업 선생이 본인이 노예와 다름없었던 징용자들의 비참한 삶,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민중으로서의 고통과 설움을 본인의 기억을 더듬어 작성한 수기였다. 책이 발간되자 지역 사회에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일제강제노역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리고 6개월여 후인 2017년 5월 이상업 선생은 영면에 들어갔다. 지옥같은 강제노역의 현장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간 동료와 생명은 유지했지만 무관심과 가난의 굴레 속에서 일생을 살다간 일제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한권의 책을 남긴 채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았던 지루한 싸움은 예순다섯의 아들 이선희 씨의 몫으로 넘어왔다. 이 씨는 지난 14일 광주지방법원에 일본 전범기업 6곳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2차 소송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이 씨는 아버지의 유작인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를 들고 기회회견을 갖기도 했다. 기자 회견 자리에서 이씨는 “열여섯이면, 까마득 한 애에요 애. 군 징병인 줄 알고 따라 나섰던 길이 강제 노동이었던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영암에서 대전으로, 또 부산으로 사흘을 굶고 끌려다니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낯선 땅에 다다랐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들인 저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됩니다.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고되게 일 만했는데 결국 무일푼으로 한국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아흔이 다 되어 눈 감는 그날까지 밀린 임금은 커녕 사죄 한마디 듣지 못하고 떠난 아버지를 생각하면 정말 원통합니다. 다른 욕심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마디면 됩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일제 강제노역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신에게도 마치 현실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되고 그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수없이 흘렸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책은 아버지의 유품이자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준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선희씨이다.

이선희 씨는 “정말로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눈 감은 아버지를 위해 아들 된 도리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내 생전에 전범기업 관계자 얼굴 한 번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젊은 시절에는 몰랐는데 나이를 들고나서 왜 사람들이 데모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며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남들은 관심조차 가져주지 못하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 일본 전범기업, 한국 정부가 105만 일제 강제동원 국외 동원 피해자들의 한, 울분 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주길 바랍니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