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에요”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인 친정부모’…어려운 형편에서도 물심양면 도와
[ 2019년 12월 27일 제250호 ]
노경선 기자l승인2019.12.30l수정2019.12.30 18:0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남편이 속을 썩여도 하소연 할 이는 하나 없고 보고 싶은 부모는 이역만리 이국땅에 있다.

멀고도 먼 낯선 땅에서 고향을 향한 먹먹한 마음을 누르고 눈물을 삼키며 살아가는 이주여성들의 아픔이다.  

이 아픔을 부모의 마음으로 보듬고 쓰다듬어 주는 이가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영암자활센터 영농사업단장인 이상석 씨와 아내 이진희 씨.

21년차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 부부는 20녀 년 전부터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영암으로 시집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손수 만든 반찬과 쌀을 기부하고 있다.

또,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쪼개고 또 쪼개 고향의 부모님을 초대 할 보증금을 마련해주고 이들의 아이들도 살뜰히 챙기며 결혼식의 혼주자리에 앉아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친정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석 씨의 오른손은 15년 전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근육과 신경이 절단 돼 말 그대로 모양만 남아있으며 이진희 씨는 심각한 척추협착증세로 수개월의 병원 생활을 반복하는 상황이지만 이들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따듯했고 진실했다.

이상석 씨는 “우리부부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헌데 늦은 나이에 이렇게 많은 딸들이 생기니 그저 감사할 뿐이죠”라며 이주여성들을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고 소개했다.

부부와 인연을 맺고 있는 7명의 이주여성들 모두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부부에게 특히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A씨는 15년 전 8살 차이나는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왔다. 결혼 후 양식장과 공장 등 쉴 새 없이 일했지만 세 아이를 키워야 할 남편은 A씨가 벌어오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술로 허비하며 살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돌아오는 것은 세 아이 앞에서 일어나는 빈번한 폭력과 무시였고 A씨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편은 심지어 소유하고 있던 땅을 빚으로 모두 날리며 A씨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A씨가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씨 부부의 관심과 노력이었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세 아이만 보며 살고 있었는데 고향에서 모시고 온 부모를 2달 만에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오만정이 떨어졌나봅니다. 십 수 년을 버티던 아이가 이혼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때 정말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고 말하던 그는 “다른 건 고쳐서 살아보라고 하겠지만 상습적인 폭력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혼소송에서 이겨 양육권과 양육비 지급을 받게 됐지만 정상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할지 걱정이 됩니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씨 부부는 차상위계층으로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지만 본인들의 몫은 없었다.

매달 나오는 20㎏의 쌀은 고스란히 이주여성들에게 전달됐고 부부의 몫으로 연간 16만원 한도로 제공되는 문화누리카드는 학용품이 되어 아이들의 손에 쥐어졌다.

부부는 “우리는 쓸 것이 거의 없어 그냥 아이들 공책·연필 등을 사는데 사용하고 있어요”라며 “둘이서 먹어봐야 얼마나 먹고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요. 물려줄 자식도 없다보니 지금 필요한 아이들이 먼저 쓰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라고 겸손한 마음을 전했다.

이씨 부부의 도움을 받은 이주여성들은 부부의 생일과 명절이 되면 남편과 함께 찾아와 자식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석 씨는 “재혼한 남편도 우리를 장인, 장모라 부르곤 하는데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민망하기도 합니다”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하룻밤 묵어가는 것을 보면 정말 시집 간 딸이 온 것처럼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아내 이진희 씨는 “살다보니 자연스레 가까워진 이들의 사연이 안타까워 우리가 쓰고 남는 것 조금 나눴을 뿐인데 이렇게 칭찬을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라면서 “이주여성들이 필요한 것은 정치를 통한 거창한 정책이나 지원보다 마음을 담은 따듯한 말 한마디에요.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라며 이주여성들의 아픔을 전했다.

아픈 마음 기댈 곳이 없어 서러움으로 타지 생활을 버텨나가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아픔이 더 많은 지역민의 관심과 사랑으로 녹아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노경선 기자  demateo@naver.com
<저작권자 © 영암우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노경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중앙로 17-1(2F)   |   대표전화 : 061-472-1470   |   팩스 : 061-472-1469
등록번호 : 전남 다 00347   |   발행처 : 영암언론협동조합   |   발행인 : 박노신   |   편집인 : 우용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우용희
Copyright © 2020 영암우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