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진시황이 엄마의 정부(情夫) 소생이라는 마타도어

진시황 이야기 - 4
[ 2019년 12월 27일 제250호 ]
영암우리신문l승인2019.12.27l수정2019.12.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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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시사평론가 
김갑수

지난번에 나는 문헌의 기록에 의해서는 진시황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가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문헌들마다 주장이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진시황의 생부가 여불위라고 말한 대표적인 역사서는 사마천의 《사기》 <여불위열전>입니다. 그런데 일단 이 <여불위열전>의 근간이 된 사료가 분명치 않습니다.

진시황은 기원전 259~210년의 사람이고 사마천은 기원전 145(또는 135)~187년 때의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생몰연대는 약 12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마천의 《사기》는 진시황에 대하여 당대에 쓴 역사서가 아닙니다. 더구나 《사기》 <열전>은 문학성이 강한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학성이라는 것은 ‘허구성(fiction)’과도 공유되는 개념입니다.

나는 일찍이 ‘한나라 고조와 상산사호’ 이야기나 ‘진시황과 한비자의 죽음’ 이야기 등을 통해 <사기열전>이 가진 비핍진성을 지적하면서 <사기열전>은 야사라는 사실을 환기한 바가 있습니다. <사기열전>에는 극화된 것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진시황의 아버지가 여불위라는 이야기는 대단히 소설적인 패턴입니다.

또한 여불위가 진시황의 생부라고 한 <여불위열전>의 기록에는 허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조희가 대기(大期)에 이르러 아들을 낳았다’고 한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대기란 일정한 시간을 다 채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임 기간인 280일을 채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임신한 것을 아는 데에는 생리의 멈춤과 임신 초기의 징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떻든 이것을 통해 아는 데에도 최소 1개월에서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조희가 임신한 채 자초에게 가서 아이를 낳았다면 대기를 채우기 전이라야 합니다.

또한 사마천이 사기를 썼을 당시는 이미 진시황이 죽고 진나라가 망하고 나서 100년 이상이나 된 시점으로 한(漢)나라의 시대였지요. 한 고조 유방(재위, 기원전 201~195)은 새로이 통일된 한 제국을 통치하는 이념과 수단으로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황제로서 서생 공자의 묘에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가는 법가를 깎아내리고 패권 군주를 백안시했습니다.

사실 진시황은 대단히 엄격하고 합리적인 황제였습니다. 그가 폭군의 대명사인 양 알려진 것은 유가의 선전선동(?)에 말미암은 바가 큽니다. 흔히 말하는 분서갱유나 불로초 설화 등에는 과장으로 인한 오해가 다분히 있습니다. 지면상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하겠습니다.

진시황의 생부가 자초 즉 장양왕이 아니고 여불위라는 설은 네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의 생모인 조희, 조희의 정부(편의상 이렇게 부릅니다)인 여불위, 진시황의 아버지인 자초 그리고 진시황 본인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이것을 100%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생모 조희뿐입니다. 아무튼 위 네 사람 중 누구 하나가 발설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소문이 날 리가 없습니다.

먼저 조희와 자초는 이를 발설했을 리가 없습니다. 소문이 나면 자기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진시황 자신은 사실상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을뿐더러 이런 소문이 나면 가장 불리해질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발설자는 여불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불위는 말년에 진시황에게 추방을 당하고 스스로 자살했습니다. 여불위는 자기가 진시황의 아버지라는 게 소문나면 이로워지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바로 이 이유로 그의 말은 믿기가 또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 기술의 불문율이 있습니다. 그것은 망한 나라의 군주는 모두 격하된다는 점입니다. 망국의 군주는 어김없이 찌질하거나 음탕한 폭군으로 기술됩니다. 진 제국은 진시황이 죽고 나서 4년 후에 망했습니다. 그의 18번째 아들 호해가 잠시 대를 이었지만 진시황이 사실상 마지막 군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시황이 왕의 아들이 아니라 장사꾼 출신이요, 엄마의 정부이기도 했던 여불위의 소생이라는 소문은 진시황 격하에 아주 효과적인 콘텐츠일 겁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감안하여 나는 ‘진시황은 여불위의 자식이 아니라 장양왕의 자식이 맞을 거다’라는 추론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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