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시사평론가 김갑수

기전 227년 어느 날, 진(秦)나라 정궁 함양궁에 두 명의 사신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멀리 연(燕)에서 보낸 정사 형가와 부사 진무양이었다. 진나라 조정은 막 도착한 두 사신을 최상의 국빈 예우인 구빈례(九賓禮, 9명이 영접)로 맞아들였다. 영정(진시황)은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신은 연나라에서 보낸 항복 사절인데다 대단히 희귀한 선물 두 점을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연왕께서는 대왕의 위풍에 놀라 감히 군사를 일으켜 대적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나라를 바쳐 신하가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사신을 보내 사람의 머리 하나와 지도 한 장을 바치옵니다.”

연나라의 사신이 가져왔다는 사람의 머리는 영정이 이를 갈면서 증오해마지 않던 번어기(樊於期)의 것이었다. 번어기는 원래 진나라의 장수였는데 조나라 공격에 실패한 후 군법회의에 회부되자 연나라로 도망한 인물이다. 연나라 조정은 번어기를 우대해 주었다. 다음으로 지도 역시 보통의 지도가 아니었다. 영정이 가장 탐내는 땅인 연나라 독항의 지도였다. 그 시대 지도의 중요성은 지금보다 더욱 컸다.

아무튼 연나라의 항복 사실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거기에 놀라운 선물들까지 가져왔으니 영정은 이 특사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정사 형가는 번어기의 목이 들어 있는 함을, 부사 진무양은 독항의 지도를 들고 의전 집행에 나선 아홉 명과 함께 위엄 넘치는 함양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부사 진무양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정사 형가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진무양을 힐끗 보고는 웃음을 지으며 영정에게 당당히 말했다.

“저 친구는 원래 북쪽 오랑캐 출신의 촌뜨기입니다. 대왕의 위엄에 주눅이 든 것 같으니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영정은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더니, “형가! 그대가 저 친구에게서 독항의 지도를 가져와 직접 펼쳐보도록 하라”고 일렀다.

형가는 지도를 받아 들고 영정 바로 앞에 다가와 지도를 펼치기 시작했다. 두루마리 지도가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지도가 다 펼쳐졌을 때 감춰진 비수가 얼핏 드러났다. 영정은 깜짝 놀랐지만 형가는 침착했다. 그는 우선 영정의 오른쪽 소매를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비수로 영정의 가슴을 찔렀다. 만약 비수가 조금이라도 영정의 몸을 찔렀더라면 영정은 그 자리에서 피가 목을 막아 죽었을 것이다. 비수는 엄청나게 고가인 명품으로서 치명적인 맹독이 묻혀 있었다. 그러나 젊은 영정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서 위기를 모면했다.

영정은 달아났고 형가는 비수를 든 채 영정을 쫓았다. 도열한 대신들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른 채 “어, 어!”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국법에 따라 그들 중 누구도 어전에서는 무기를 소지할 수가 없었다. 영정은 죽어라 도망을 가고 형가는 뒤를 쫓아가는 긴박한 활극이 펼쳐졌다. 어느 누구도 맹독성 비수를 든 형가에게 덤벼들 수가 없었다. 영정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바로 이때 어의 하무저가 약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형가는 갑자기 날아오는 정체불명의 물건을 피하느라 약간 지체했다. 영정은 순식간이기는 하지만 숨 돌릴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영정은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너무 길어서(7척, 162센티미터) 뽑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폐하! 칼을 등 뒤로 옮겨 매 빼십시오.” 코치를 받은 영정은 장검을 뽑아냈다. 그는 장검으로 형가의 왼쪽 다리를 찔렀다. 형가는 꿇어앉는 자세로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처절한 감투정신을 보였다. 그는 비수를 영정에게 던졌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영정은 기민하게 피했고 비수는 영정의 귀 옆을 지나 기둥에 가서 부딪혔다. 영정은 장검으로 형가를 여덟 번이나 찔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가는 죽지 않았다. 형가는 사태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고는 두 다리를 쫙 벌리는 자세로 눕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두 다리를 짝 벌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고대 중국에서 상대를 졸라 우습게 본다는 의미)

“네가 오늘 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너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협박하여 네가 그동안 탈취한 나라들의 땅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만들려고 했다. 나는 지금 죽지만 나로 인하여 너를 죽이려는 협객들이 끊이지 않고 나타날 것이다.”

그때서야 주변에 있던 진나라 대신들이 우르르 형가에게 몰려가 이미 치명상을 입은 형가를 짓밟아 죽여 버렸다.

이 암살사건이 실패한 이유는 물론 부사 진무양에게 있다. 그런데 형가에게는 더 좋은 동업자가 있었는데 길이 멀어 도착하지 앉자 연의 태자 단이 진무양을 데리고 가라고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부사가 진무양이었다. 형가는 연나라를 떠나올 때 비감한 시 한 수를 남겼다.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의 물은 차기도 하구나. 장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니”

[후일담] 영정은 사건이 마무리된 다음 대대적인 논공행상을 실시했다. 어의 하무저는 황금 200일(鎰, 1일은 20냥)을 받았다. 금 한 돈을 20만원으로 계산할 때 최소 80억 원 어치의 금이다. 또한 영정은 공식석상에서 말했다. “무저는 나를 너무나도 생각한 나머지 약주머니를 들어 자객에게 던질 생각까지 했다.”

하무저는 나중에 자기 친구인 공손계공에게 이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공손계공은 이 이야기를 자기 친구인 사마담에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사마담은 누구인가? 그는 사마천의 아버지다. 형가는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에 기록됐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은 다른 것보다 사료적 가치가 단연 출중한 법이다. 이것은 그때의 일이 이토록 세세하게 전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언]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 중국 여순감옥에는 안 의사를 가리켜 ‘아주 제1 의협’이라고 한 휘호가 전시되어 있다. 이 휘호는 중국인 학자 장병린이 쓴 것이다. 중국인들은 중국 최고의 협객을 형가라고 말해왔다. 형가는 실패했지만 그로 인하여 반 진나라 역량이 결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인들도 대일본제국 제1실력자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는 데 성공한 안중근 의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주 제1의 의로운 협객’이라고 칭예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형가는 후순위로 밀린다. 그는 아주 제2의 협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