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폭침 당시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영암에서 첫 확인

[ 2019년 11월 22일 제245호 ] 장정안 기자l승인2019.11.22l수정2019.11.2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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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유사용 씨 흔적 찾아 日기자 직접 영암 방문 취재
미쓰비시 중공업 폭침 사망자 중 강제징용자 첫 사례
본지 기사 통해 유사용 씨 흔적 찾아… 유가족과 인터뷰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의 유족으로서 미쓰비시에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지난 20일 서호면 노인복지회관 내 게이트볼장에는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다. 주인공은 일본 교도통신의 아와쿠라 요시카츠(粟倉義勝) 기자였다. 아와쿠라 기자는 지난 8월 23일자 영암우리신문 3면에 보도된 일제강제징용피해자 故 유사용 씨의 유가족인 유길안 씨를 찾아 이날 일본에서 영암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와쿠라 기자는 상당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1945년 1월 14일 아이치현 소재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강제징용노역 중 미국의 폭격에 유명을 달리한 故 유사용 씨의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와쿠라 기자는 “나고야에는 폭격으로 사망한 이들의 명단을 기록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의 순직비 명판이 있는데 명판에는 한국인이나 대만인들의 이름이 모두 빠져 있다”며 “하지만 30여년 전 일본의 시민단체가 입수한 미쓰비시의 징용자 명부에 ‘유계토용(愈渓土用)’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유사용(兪士用) 씨의 이름이 잘못 기록된 것 같아 확인 차 왔다”고 말했다.

사연은 이랬다. 한국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일본의 시민단체에서도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 등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오래전부터 활동해왔다. 그러던 중 미쓰비시 내부 자료에서 징용자 이름들을 발견했다.

일본의 시민단체에서는 400여명의 명단 중 순직비에 등재되지 않은 10여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중 故 유사용(兪士用) 씨로 추측되는 ‘愈渓土用’이라는 이름도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다만, 사망일자와 주소 등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일본 시민단체에서는 유토용이라는 강제징용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보내준 자료에서 그토록 찾지 못했던 답을 얻어냈다. 바로 영암우리신문이 인터뷰하고 취재해 보도한 유사용 씨 유족 유길안 씨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일본의 시민단체에서는 영암우리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故 유사용 씨가 일본 후생성 자료에 기록된 1945년 1월 14일 미군 폭격으로 숨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의 사망자 16명 중 한 명일 것으로 확신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영암우리신문에 메일을 보내 확인해가며 진상 조사에 나섰다. 

또한 故 유사용 씨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의 미군 폭격으로 숨진 첫 강제징용 피해자의 확인 사례가 될 것이며, 이러한 확인을 통해 나머지 사망자들의 강제징용 사례도 풀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故 유사용 씨의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의 해명이 미쓰비시 측에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압박하는 중요한 과제라고도 했다. 

일본 내에서 현재의 상황이 관심을 받자 사실관계를 확인코자 일본의 교도통신 이와쿠라 기자는 현해탄을 건너 영암까지 찾아 온 것이었다.

일본 기자의 방문에 유길안 씨는 다소 놀란 모습이었지만 인터뷰 동안 “우리 작은아버지의 흔적을 잊지 않고 찾아줘 감사하다”는 말을 수차례 건넸다.

8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백발이 된 조카의 기억은 흐릿했지만 일본인 기자가 묻는 대답에 성심껏 기억을 끄집어냈다. 자신이 12살 무렵 일본 순사에게 작은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기억, 그리고 3년 후 일본 군인들이 자그마한 상자에 담긴 작은아버지의 유해를 담아 건네줬던 기억, 작은아버지와 함께 강제징용에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살아생전 작은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등을 빠짐없이 전했다.

미쓰비시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아와쿠라 기자의 부탁에 유길안 씨는 “이제와 보상을 바라기보다는 강제노역에 끌려가 안타깝게 돌아가신 우리 작은아버지의 명예를 찾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유사용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일본으로 왔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진실 그대로 적어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아와쿠라 기자는 “짧은 인터뷰였으나 유가족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지난 74년 동안 살아왔는지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며 “과거사 문제 청산의 여러 방안 중 이번 유길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대로 기록으로 남게 하는 것으로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원하시는 유가족이 계신다는 것을 기사에 잘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정안 기자  news@woori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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